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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우리는 이기적일까 -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너, 나, 우리의 16가지 고민
송가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7월
평점 :
이쯤 되니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기적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가 이기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런 상황이었다. 수학 임용 고시를 위해 칸트의 선험적 주체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 고시를 위해 수십 년간 써온 글씨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 백곰의 털 한 올, 상어의 비늘 하나에 해당할 만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이런 상황이 바로 문제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기심은 비판하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한 우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장한 결과였다. 우리가 이기적이지조차 못했다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떠올리면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p, 190~191
졸업을 앞두니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듣게 된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2년 전이었나, 전문대를 다니던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었다. 그땐 나도 취업이라는 걸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시기와 질투보다는 신기함이 앞섰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였고, 부모님들도 서로 다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냥 신기했다. 그 친구들도 '그만둘 수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분이랄까?' 라고 말하던 때였으니까. 그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년 정도 된 지금은 술자리에 나가면 '세은이는 학생이니까 우리가 낼게!' 하며 재밌게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 노릇을(전혀 악의가 없는) 하고있다.
그때 들은 친구들의 취업 소식과 요즘 듣게 되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2년 전엔 신기함이었다면 요즘 듣게 되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불안, 초조를 동반하며 시기, 질투까지 느끼게 한달까.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누구 어디 붙었다며?'가 기본적인 대화의 주제가 되었고, '야, 일찍 일 시작해봤자 고생이야. 평생 할 일인데 난 좀 더 놀래.' 라며 애써 태연한 척, 쿨한 척 하며 순수한 축하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기쁜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네지도 못하는 이런 이기적인 모습에 스스로가 싫어지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했던 수많은 고민들이 이 책 《20대, 우리는 이기적일까》에 전부 담겨있었다. 고맙게도 이 고민을 풀 수 있는 메시지와 함께.
수많은 방황 끝에 철학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저자. 책상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종이 뭉치가 이 책의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고민이 있으면 종이에 끄적이며 정리한다는 저자는 그 종이 뭉치에 적혀있던 고민들을 보며 '지금 생각해보면 작디작은 문제들인데 이런 문제들로 고민했던 때가 있었구나(p, 7)'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겪었던 고민을 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20대에게 저자가 공부하고 있는 인문학을 이용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20대가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가 이기적이게 보일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를 토닥여주며 우리가 하는 고민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는 책. 친구의 성공에 순수한 축하를 보내기도 버거운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가진 스스로에게도 질려버린 우리에게 그 누구보다 시원하게 위로와 조언을 건네줄 그런 책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정말 첫 번째 조건일까? 우리는 지금 이익을 얻고 있을까? 우리가 얻는 쥐꼬리만 한, 아니, 올챙이 꼬리(올챙이의 큰 꼬리도 개구리가 되면……)만 한 월급은 과연 우리에게 이익일까? 그런데 왜 우리는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까? 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앞으로도 더 행복할 것 같지 않을까? 혹시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익을 얻는 조건이 아니라 행복과 젊음 등을 빼앗기고 있는 조건은 아닐까? 혹시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젊음을 내놓으라며 달려드는 이들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무조건 행복을 빼앗거나 혹은 내기를 해서 우리가 이긴다면 행복을 빼앗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에게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행복과 젊음, 청춘을 죄다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전부 털리느니 일단 싸워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 행복을 얻고 있을까, 행복을 빼앗기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이익을 얻고 있을까, 손해를 보고 있을까?
-p, 84~85 (가능성의 절대성 中)
게다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불확실할 때에는 다른 욕구들은 고개도 못 내민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들은 층위가 있다. 가장 하위 욕구는 생리적 욕구로, 의식주나 성욕 등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들이다. 그리고 상위 욕구로 갈수록 타인과 관계 맺고 싶은 사회적 욕구, 꿈을 실현하고픈 자아실현 욕구 등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욕구들은 아무렇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하위 욕구가 충분히 만족되어야 상위 욕구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 나온다.
우리의 가장 기본 욕구는 취직 욕구이다. 취직을 하느냐 마느냐에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다. 취직 욕구가 해결되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이후의 욕구를 고려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해결해야 어떤 국가에서 생산된 고기를 사 먹을지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는 정말 이기적일까?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바로 옆의 타인의 고통에도 침묵하고,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조차 조금이라도 더 이기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그리고 이 모든 이기적인 행동들의 이유가 우리의 생존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우리는, 과연 이기적일까?
-p, 186 (우리의 이기심 中)
C와 남자 친구는 결국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친구에게 물을 수 있었다. 둘의 신기했던 관계를 알고 계속 묻고 싶었던, 하지만 진행 중인 관계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너는 남자 친구에게 왜 마음을 안 주니? 너는 그의 문제를 고민해주고 해결책까지 주지만, 네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잖아."
친구가 말했다.
"많이 좋아한 건 아니라서 그래."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내게 떠올랐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누구를? 네 말의 목적어가 뭐야? 네가 '남자 친구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니면 네가 '너 자신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마 친구의 목적어는 '남자 친구'였을 것이다. 자신이 그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자신을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그에 대한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친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정도도 부족했기 때문에, 타인에게, 심지어 자신의 사랑을 가장 원하는 남자 친구에게도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나누어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친구는 혹시 자기가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게 되면, 그래서 사랑을 듬뿍 주게 되면 스스로를 덜 사랑하게 되거나 더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이에게 마음을 주는 대신 도움을 주고 가르침을 주는 등의 다른 행동을 통해 사랑을 대신하려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내게는 아들을 챙기는 엄마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친구는 어쩌면 이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해도 자기애는 영속함을. 타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 덜 돌보더라도 곧 스스로에게 돌아올 것임을. 사랑했던 이와 헤어지더라도 자기애는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오히려 사랑한 이후에 풍부한 경험을 갖게 된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될 것임을.
-p, 260~261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