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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별은, 세 개 반을 주고 싶은데, 알라딘에서는 불가;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미국 북동부의 시골 마을 툼스빌에 있는 장례회사, 주인공은 아마추어 탐정, 게다가 시체. 등장인물 모두가 죽음 혹은 삶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못지않게 죽음에 집착하고 있는 주인공은 이야기 1/3 쯤에서 갑자기 죽는다.
주인공 뿐 아니라 나중에는 누가 살아남을 질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연이어 죽고 우후죽순 시체들이 깨어나 돌아다니고 있는데(책 소개에는 '되살아난다'고 되어있으나 이 시체들의 심장이 다시 뛰는 게 아니므로 '살아난다'고 표현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시체가 깨어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골지는 장례회사 집안인 발리콘 가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인데 사실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다음에는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가 아니면 누가 살아있는 사람이고 누가 시체인가에 몰두하게 되어버려서, 사실, 추리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좀비 잔뜩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라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골격이었고, 이제 식상해지는(이라고 쓰기에는 사실 읽은 게 별로 없다;) 추리소설의 구성과 닮은 듯 닮지 않은 건 전적으로 '살아있는 시체'의 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이게 1989년작, 그것도 작가의 처녀작이라니, 일본의 장르문학은 정말로 두텁구나, 싶은 게 부럽기도 하고-
다만, 맹점이랄까- 발리콘 가에서 일어난 일과 상관 없는 깨어난 시체들은 장치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사족처럼 되어버린 게 아쉽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 중간 작가가 '그린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다른 결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의 뉘앙스의 말을 끼워넣었는데, 그러기엔 결말이 사실 별 거 없다. 시체의 결말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것일테니.
그래도 미국의 장례법에 대한 고찰이라던가 미묘한 비꼼, 죽음 자체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버무리는 능력은 높이 사주고 있다. 그래도, 김선영씨 번역이고 시공사 출판인데 문장이 이따위라는 건 작가가 요따위로 썼다는 것이겠지. 못쓴 문장은 아닌데- 문체가 나와 맞지 않는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여하튼- '살아있는 시체'가 지칭하는 건 '깨어난 시체' 뿐 아니라, 사실 이렇게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있는 시체'일지도 모른다는, 단지 물리적, 임상적 죽음을 맞이해야 '시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그런 이야기를 던져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