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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ㅣ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지난 5월 국제도서전 당시, 으레 당연히 들르던 창비에서 에디터가 '추천'을 연발하였던 작품. 뭐, 그럼에도 그때는 다른 책을 선택하였더랬는데, 올 여름, 정기구독하고 있는 창비어린이의 구독 기간을 연장하면서 선물로 받았고, 그리고 8월이 다 가버린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었다.
결론은- 그 때 그 추천 안 받아들여서 미안해요,랄까. 어우- 간만에 해피엔딩인 소설 읽으면서 코끝이 찌잉-했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미묘하게 맞물리면서, 지금 일어나는 이 일의 이유를 과거의 사건이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리멸렬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그저 사건을 툭 던져놓고 독자들 입에서 탄성이 나오도록 한다. 그만큼 이 사건들은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사건은 치밀하고, 문체는 건조하지만 가독성도 최고, 흡입력도 최고인 수작이다.
요즘 계속 번역물만 읽고 있는데, 장르가 장르다보니 듣보잡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좀 많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교열 엉망이라 읽으면서 비명 지르는 일이 비일비재인데, 이 책, 그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줘도 좋을 듯하다. 게다가, 해설에서 보자니 작가의 문체가 '건조하지만 유머러스한'이라고 하던데-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그 두 가지만 놓고 본다면, 번역자가 작가 문체를 고스란히 살렸다고 말해도 모자라지 않다. 짧고 툭툭 내뱉는듯한 이 건조한 문체에서 터지는 웃음을 잇새에 물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을 동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운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아무짝에도-쓸모없고-지저분하고-냄새-풀풀-나는-돼지도둑-고조할아버지 때문'이라고 툴툴대는 주인공에게 오히려 피식대도록 만든다. 이 힘이 5대를 내려오던 '저주'를 끝내도록 만드는 힘이 아닐까.
소년원에서 부당한 노동을 하면서 인권이 바닥에 떨어진 최악의 상황의 아이들이 성장하고 괴로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결국 '행동력'이라는 것도 생각해보게 하는 문제이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인권'의 문제는 비단 '소년원의 문제아'뿐 아니라, 인종에 대해서도,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마땅히 '추천' 받을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