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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하멜른
케이스 매퀸.애덤 매퀸 지음, 이지오 옮김, 오석균 감수 / 가치창조 / 2007년 1월
평점 :
신문에 이 책이 소개되었을 때, 내 사랑 하멜른이 배경이라니 사야지,하다 잊어버리고 국제도서전에 가서야 구입했는데-(덕분에 엽서도 받았지만;) 읽은 건 8월이라니 좀, 안습이다. 그래도, 하멜른 가기 전에 반드시 다 읽고 가리라, 마음 먹었던 건 실행하였으니 다행이랄까.
'1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뤼네부르크 사본에 처음 등장한다. 그 내용은 "서기 1284년 6월 26일,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축일인 이 날, 다색 옷을 입은 한 피리 연주자가 하멜른에서 태어난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쾨펜 지역의 칼바리로 떠났다"는 것이다. ...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뼈대가 만들어지고 살이 붙으면서 이 사건은 전설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19세기 초반에 마침내 그림 형제에 의해 구체적인 윤곽이 만들어진다.'
해설에 있는 이 내용을 읽고, 이 책 리뷰를 쓰기 전에 원본이나 다시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그림형제 동화전집을 꺼내들었는데- 좌절해버렸다. 그림형제가 출판한 '동화전집'에 수록된 210편의 이야기 중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없다. '독일 신화'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 대체 어디에 수록이 되어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으나 여러 문헌과 정황상, 그림 형제가 수집하여 정리해놓은 건 사실인 것 같으므로 그냥 '그림 동화'에 포함시켜 버릴란다;
줄거리는 사실, 민담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큰 뼈대는 다르지 않다. '다색 옷을 입은 피리 연주자'가 하멜른에 와서 취를 퇴치하고 그 후의 상황까지의 이야기인데, 그 피리 연주자가 왜 피리 연주자가 되었는지가 1장에 나오고, 그 후부터는 1284년 8월 22일부터 8월 26일까지의 사건이 치밀하고 촘촘하게 서술되고 있다. 피리 연주자가 왜 하멜른에 오게 되었는지, 하멜른 사람들이 피리 연주자를 왜 배신하였는지, 어째서 저주를 내리게 되었는지,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지- 끝까지 읽어내야만 아아-하는 탄성을 쏟아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픽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우리나라로 치면 '퓨전 사극'쯤 되는 걸까-) 추리소설, 내지는 마법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꽤 재미있었다.(오타는 그냥 좀 눈 감아주기로 했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이건 뭐..;)
'피리를 분다'는 행위로 동물을 조종할 수도 있고, 상대의 독을 내 몸으로 옮겨올 수도 있고,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다.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도 있고(이건 음악이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행동 역시 조종할 수가 있다. 이런 중세 특유의 마법과도 같은 부분에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떠올린 건 조금 억지일까. (물론, 유리알 연주가 어떤 마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유리알 유희' 자체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마법과도 같았으니 뭐, 나에게만 그렇다고 치자.)
요하네스가 입은 다색 의상의 색, 빨강과 노랑은 각각 '정의'와 '자비'를 의미한다. 얼핏 보면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신념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요하네스는 목숨을 걸어가며 피리를 분다.(그림 동화 중 '충신 요하네스'의 이름과 같은 건 그냥 우연일까-)
이 소설 이면의 이야기는 아마, 요하네스, 클라라, 안셀름 모두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이 싸움을 시작하고 또 키우게 된 것일 게다. 농노이면서 무력하지만 인정하려들지 않아 가족을 고생시킨 아버지, 시장이면서 무력하여 시의회에게 속고 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아버지, 농노에게 자신의 아들을 낳았지만 인정하지 않았으며 폭압으로 농노를 괴롭히고 있는 아버지. 이들을 용서하기 위해 혹은 벗어나기 위해 세 아이들은 피리를 불고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다.
이야기는, 해피엔드일까. 쥐떼로부터 하멜른을 구했고, 요하네스는 스승악사가 되었고, 사랑도 일도 탄탄대로일테지만, 아이들은 사라졌다. 법 앞에 심판 받아야 할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도망쳤다. 해피엔드일까.
두께나 크기에 비해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좀 저어되지만,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고 있는 어두침침한 삽화도 마음에 들었고, 내용도 썩 불편하지 않았다.
덧, 별 세 개 반을 주고 싶은데, 알라딘은 반 개는 정할 수 없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