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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색깔 ㅣ 높새바람 19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5월
평점 :
오랜만에 사연 많은 책이 손에 들어왔다. 무어, 사연이라고 해봐야 '나'와의 사연이지만 내게는 몇 없는 경험이라 이 책이 아주 오래도록 내게 특별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로 3부작 중에 이 책이 가장 좋다.(작가님이 동안이고 예쁘고 이 책에 사인해줘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가독성 또한 세 권 중 최고여서, 한 번에 다 읽진 못했지만, 다 읽은 시간을 합치면 세 시간 남짓 걸린 모양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지팡이 경주'에서 평론가가 걸고 넘어갔던 '선택자의 당위성'에 대해 더이상 누구도,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삼 남매의 맏이 '아진'이 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날, 읽는이로서 완전한 세계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이, 아니, 인간이 판타지를 열망하는 이유와 같다. 현실은 고단하고, 슬프고, 괴롭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현실을 이겨낼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바로 '판타지의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아진이 불완전한 세계의 슬픔을 받아들이기 위해 완전한 세계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오롯이 아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작가가 이야기했듯, 이번 이야기에서는 모든 일이 아진에게 비롯되어 아진으로 마무리된다. 한 개인의 세계는 그 개인이 속한 전체 만큼이나 불완전하여, 끝없이 변화하고, 받아들이고, 확장해나간다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진이 자신이 읽은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불완전한 존재여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고단한 현실을 살아갈 힘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색은 나뉠 때가 아니라 섞일 때 온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항상 끊임없이 주변의 영향을 받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렇게 현실에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고단해지면, 저 완전한 세계로 가끔, 슥 발을 담갔다 빼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변화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별꽃의 수호자의 이름과 이 이야기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아무도 모르는 색깔'의 이름(테히사와 아진을 아무리 합쳐봐도 당최 모르겠다. '이름'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작가만이 아닌 모양이다.). 열심히 생각하는 사이, 어쩌면, 나도 경험하고도 잊고있었는지 모를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가 꿈을 타고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알록달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고, 열정이 부족한 나로서는 꽤나, 열심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