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의 요정
칼리나 스테파노바 지음, 조병준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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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겐 누구나 요정이 있다. 

 

전철을 타고 2시간 걸려 도착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3개월 하고도 2주 정도의 수업인데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책을 읽기로 했다. 가볍고 잔잔한 이야기가 담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읽기를 좋아해서 고르게 된 책 중 하나, [앤의요정]. 나라도 조금은 생소한 불가리아 소설이다. 칼리나 스테파노바 저자가 실제 이 여주인공처럼 순수하고 발랄한 분이 아닐까 상상하면서 읽어나갔다. 손에 잡기에도 좋은 사이즈에 소프트커버라 읽는 동안 정말이지 동화속 주인공 앤처럼 갖가지 상상을 하면서 읽어내려가기에 주위를 분산시키는 요소도 전혀 없다.




예전에 초코파이 광고를 보면 “둥그런 초코파이 정情이 떴어요~!” 라는 멘트와 함께 사람들 머리 위로 정말 초코파이가 둥둥 더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 당시 그 광고가 좋았고 정말이지 시골 마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맨 뒷자석에 앉아 마을 할머니, 아주머니, 할아버지 머리 위로 둥그런 초코파이가 두둥실 뜬듯한 상상이 마구 떠올라 한참을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앤의요정]에선 앤 주변에 앤과 똑같은 앤의 분신이랄 수 있는 앤들의 요정이 7명이나 같이 다닌다. 꼼꼼하게 관찰하고 메모하며 글을 쓰는 지성역할을 하는 앤, 왈가닥 장난치기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앤,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앤 등등. 총 7명의 앤의 요정. 사람이 갖은 성격을 분리해서 각각의 요정들은 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다. 늘 동화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겠거니 싶은 진리(?)는 바로 순수해야, 사람들을 사랑해야 자신의 요정을 볼 수 있고 돌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앤은 자신의 요정을 보게 되고, 누구나 밑지 않을 법한 일이지만 어렵게 꺼낸 엄마에게 고백하게 되는데 엄마에게도 이미 요정들은 함께 생활한지 오래되었다. 요정들의 습관도 각자의 생활도 서로가 바라보는 관계였던 것이다. 이 놀라운 일. 나에게도 우리 엄마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멀리 시골에 떨어져 계신 엄마도 매일 요정편에 보고 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엄마 요정도 내게 왔다갔다 하고.^^ㅋㅋ




전철 안에서 읽다 보면 마구마구 상상의 나래를 펴다보면 웃음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왠지 모르게 사람들을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거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옆에서 왈가닥 성격들은 잠들어 있고 진지하게 책을 좋아하는 요정이 같이 주인 어깨 위에 앉아 같이 책을 내려다보는 것 같고, 술에 만취한 아저씨의 어깨와 머리 위엔 같이 헤롱대는 요정들이 간신히 팔걸이에 걸려 있는 듯한 상상.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남자친구가 있는 회사나 집으로 가까이 지나치게 될 때면 내 요정 몇 명은 그리로 보내 놓기도 하고 그런다. 아, 요정들의 특성 중 하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 몇 요정은 그쪽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 점 잘 명심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상상하도록! 그렇다면 내 요정들이 그 사람 곁으로, 그 사람의 요정 곁으로 가서 아픔도 달래주고 서로 서로 달래주고 낳게 해준다는 사실. 순전히 이런 말들은 믿는 사람에게만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




암튼, 귀여운 동화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늘 남자친구와 요정 얘기다. 요정을 보냈으니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말이다. 남들이 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밝아져서 좋았다. 요 녀석들, 20년 만에 내게 나타난 건가? 초등학교 다닐 땐 순진한 여동생한테 나에겐 나한테만 보이는 요정들이 있다고 거짓말을 친 적이 있는데 그걸 순전히 믿고 자신한테도 보여 달라고 했던 동생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순수했던 건지, 악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먼 산을 바라보며 상상을 했던 그때가 참 잼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동화. (실제로 제게도 요정을 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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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목어 - 마케팅 비밀 에세이
김왕기 지음 / 안그라픽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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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토막 마케팅 에세이






전문서적들보다 짧은 스토리 형식 그 안에 깊은 전략들을, 혹은 우리가 생각할 여분을 주는 책들이 좋다. 깊은 글이 아닌지라 그 글 흐름에 휘둘려 몰입될 여지도 없고, 짧은 글인지라 그 한 토막을 읽고 나서 관련지어 연상되는 생각들을 정리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마치 나 또한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라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연관된 사물과 거리 홍보, 광고 등을 볼 때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세히 꼼꼼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김왕기 저자는 CJ 마케팅도 담당했었고 현재 마케팅 그룹 대표이사로 있는 모양이다. 이 책 내용은 2004년부터 2006년의 글까지 담긴 저자 자신만의 약속이행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마케팅 이야기를 목요일에 꾸준히 써내려갔던 것이다. 마감압박도 있었음을 느낄 수 있는 자신만의 싸움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그 끊김 없이 노력한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얼마 전 언니와 동생과 함께 운동을 꾸준히 하기로 약속을 했다. 살이 많이 찐 동생처럼의 치열함이 없어서인지 저는 “운동을 하자” 라는 말에 “그래..” 라고 대답은 했지만 아직 운동을 안하고 일주일이 되었다. 다들 꾸준함이 부족해 하루 이틀 걸러 하기도 한 메모들을 보니 참 끈기가 없고 어렵구나 싶었다. 그러니 3년을 꾸준히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책임감으로 일을 행한 그 노력이 대단히 보이는 것이다.




자, 내가 방금 이렇게 기술한 한 단락 안에서도 저자 김왕기씨가 말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무엇이든 세우려거든 적당한 비교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꾸준하게 써온 책 한권이 탄생되었다, 라고만 말하면 그 감흥과 감동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케팅 에세이를 단번에 써낸 것과 달리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실제 그 일에 몸담고 있으면서 써냈다는 것에는 성공과 실패를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결과물임을 안 읽어도 유추가 가능한 대목이다. 물론 여러해 거쳐 나온 마케팅 결과를 이야기 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런 노하우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지금 내가 읽고 난 이 시점은 2008년이지만 펴낸 해는 2007년 쓰기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마치 오래된 마케팅 전략들은 도움이 안될거야, 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간 해왔던 마케팅 전략을 되풀이 하지 말자, 훌륭한 프로모션은 모방하며 마케팅 실력을 키우자는 의미에서 볼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또한 변하지 말아야 할 광고의 기본도 있는 법이다.(그 내용은 책속에서 확인하자 - 물론 이 생각도 언젠가 더욱 완벽한 광고로 변할 수 있는 명제일 수도 있다.) 꾸준히 자기발전을 이루고 연습을 할 수 있는 팁을 주기에 마케팅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적당하다고 본다. 특히 지하철에서 등하교시 읽는데 자주 끊김이 있고 집중해서 자기 생각을 해보는데 많은 도움을 줬었다.




이제는 무엇이든, 자기 일이든 공부든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가만히 앉아서 나의 일을 알아주길 바랄 수는 없는 것이듯, 꾸준한 마케팅적인 생각, 발상을 전환하는 방법 등을 익힌다면 그 일이 좀 더 수월해지고 빛나게 알릴 수 있는 길을 점차 찾아나갈 것이다. 나도 나만의 꾸준함을 하나 세워볼까? 그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뒤따라 오는 자에겐 작지만 작은 도움을 받는 길이 될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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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독립만세 - 글이 좋아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국어책
김철호 지음 / 유토피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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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국.밥]시리즈 세번째 책이 나왔다!

[국어실력이밥먹여준다] 시리즈 세 번째 책. [국어독립만세]가 나왔다.

아마도 이 저자와 이 책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성향이 좀 많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여타의 국어관련 책들은 모두 순우리말 사랑을 앞세운다던가 아니면 맞춤법에 얼마나 맞게 쓰느냐와 문법을 따지곤 한다. 그래서 머리도 아프고 딱딱하고, 오히려 거부감이 이는 책이 대다수였다. 결국 외우려고 하니 기억에도 별로 안남는다. 하지만 김철호 작가가 주장(?)하는 말에는 우리의 대중의 목소리와 생활환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걸 깊이 있게 관찰하고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좋다. 어디 어디 권위를 내세운 기관들의 기준을 빌어 그거로 해,가 아닌 어떤 어떤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말을 많이 쓰더라처럼. 말 그대로 입말과 글말을 그렇게 따로 두고 보지 않고(같은 말이라고 하는 건 아니고, 버려야 할 것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위치에서)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입말도 많이 생각해준(?)다는 말이다. 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입말을 구태여 죽이려 드는가 말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쓰고 이해하고 입에 착착 감겨 그 자리에 턱하니 맞는 우리네 살아있는 입말을 말이다.




여타의 책들에 비해 그런 정서를 잘 담아낸 부드러운 설명이 곁따라 나와 주기 때문에 읽기에도 부담 없이 재미있고 그냥 물 흐르듯이 졸졸졸 읽어 내려가 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외로 우리말이 이랬었나? 하는 의아함과 참으로 재밌는 언어가 우리말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냥 우리가 생활에서 쓰던 말들이 글로써 엮어져 있는 것을 보면 신통하게도 귀여운 생각도 많이 들고 재미있는 법칙을 발견한 듯한 쾌감도 든다. 물론 늘 한국어의 그 문법은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외국인 친구가 생긴다면 무엇보다 한국어의 어감과 말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책으로는 이 책을 첫째로 꼽을 것이다.




움직이는 국어, 우리말 한국어. 그 사랑법을 딱딱하게 순우리말 익히는 것으로만 오해하지 말고 이 책을 잠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정말이지 영어는 잘 못하면서도 영문법에 쓰이는 문법 단어에 우리가 더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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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 - 허수경 자전 에세이
허수경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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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게 반짝이는 밤하늘의 처럼


 요즘처럼 나의 책읽는 취향도, 만나는 사람과의 취향도, 만나고픈 사람의 취향도 제각각이면서 동시에, 내 입맛에만 맞게 보려는 의지가 강해지기도 드문 것 같다. 아니, 예전같으면 별 불편함없이, 쿨하려고 한게 아니라 상황이 어렵지 않아서 혹은 어렵게 생각지 않아서 만나는 만남이 많았다면 요새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같이 크게 늘었다. 때문에 만남에도 걱정이 따르고 왠지 모를 웃는 인상의 얼굴을 가져가기 이전에 먼저, 묵직한 가슴을 먼저 대동하기 일수다.

허수경의 자전에세이도... 어찌보면 신달자 에세이를 읽고 나서, 그리고 결혼한 언니집에 와 있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끌린, 생긴 취향이랄까?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수경, 그녀,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그러면서도 비난과 아픔을, 기쁨을 동시에 모두 겪어내야 했던 방송인인 그녀가 글로써 토로해 놓은 말, 글은 어떤, 무엇을 담아놓았을까 싶어 읽기 시작했다.

, 나에겐 고치지 못하는 편견이 있다면 바로 종교인이 행하는 종종의 실수들, 그리고 오히려 더욱 정도를 넘어선 잔악무도함을 저지르는 행위 같은 것을 못 보는 것이고(물론, 일부의 사람이고, 종교인이 선해야 한다는 것 또한 나의 편견이다), 방송인이 미디어를 통해 자기입장을 변호한다는 느낌을 줄 때가 그 두 번째이다. 방송인, 혹은 연예인 등 조금 알려졌다 싶으면 그들에겐 미디어가 축복의 도구(경제적인 부분, 명예적인 부분-급속도로 알려진다는 면에서, )가 되기도 하는 반면 자기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치명적인 위험도구(과다한 언론노출-사생활부분부터 그 이상의 사회적 활동의 제약까지)로 변모하게 된다. 그런데 방송인은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면 해명의 기회도 생기게 마련이다.

상대의 어리석은 부분과 악함을 조금씩 토로하며 자신의 아픔에 정당성을 주고 해명해 보이기도 하고 용서해줬다거나 이젠 이해한다는 말이나, 혹은 나로 인해, 나에게도 결점은 있다식의 끝마무리는 늘 변명처럼 들려서 싫었다.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옴을 싫어한다는 글을 쓰면서도 본인이 은연 중 계속해서 지난날 함께 했던 사람에게 겨는 칼날은 보이지가 않는 것인지 잘 포장된 글 속엔 영원히 상대는 못난, 악한. 악인으로 계속 계속 인쇄되어 살아갈 것이 보이지 않는지 아마, 방송인이 아니기에 그들이 미디어로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더 없을 것이다.(물론 충분히 악인 같은 말을 내뱉고 행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분명 알려지지 않은 사람과 결혼해서 이혼했다면 그런 주홍글자와도 같은 짐은 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자전적 에세이는 정말이지 그런면에서 강한 용기를 갖지 않으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상대의 추함도 추함이지만 자신의 아픔과 악함도 여지없이 발가벗고 다 보여준다는 의미가 될 것이기에 하지만 위로해 주고 싶다. 응원해 주고 싶다. 그저 그런 길을 걸어온 한 용감한 하나의 사람에게. 허수경씨 말대로 익명의 사람에게 칼날에 베임과도 같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일생에 얻을 수 없는 그런 커다란 위로와 격려의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것 또한 익명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아마 나는 동시에 그 두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종교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고 방송에 비쳐지기 이전에, 가정 속으로 들어간다면 한 가족을 이끌어가는 한 구성원일 뿐인 것. 더 이상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또 특별하다는 잣대보다 한 인간의 만남으로써의 기준으로 바라보게 된다. 미디어에서 자극적인 기사제목으로, 방송편집으로 보여주어도 이제는 그 너머의 한 개인의 삶과 앞으로 사람들에게 받을 대화 내용들, 시선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들이 겪은 아픔과 사건들은 방송인이나 유명인이기에 미디어에 공개되어 졌기 때문이지,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가정 내에서, 사회에서 수 많은 사건과 남보다도 못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을 대표한 삶이라고 하면 어불성설이겠지만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들이 공개했기에, 보여줬기에 그 물음과 해명에 가까운 일들이 보여지다 보니 우리네 삶은 잠시 잊고 남들을 말할 때는 쉬워지는 것이다

나는 요즘 가끔, 지인들보다도 어떨 땐 익명의 주고 받음이 더욱 진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 깊이 알지 않음이, 그리고 더욱 깊게 알려고 묻지 않음에 감사함이 느껴지는. 그렇다고 그런 개개의 익명의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지향적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때론 가깝다는 이유로, 혹은 지인이면 응당 주고 받았을 당연한 속사정이라는 시선의 관심은 어떨 땐 상대에게 주는 폭력과도 같은 무게를 던진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저 하나 하나의 사람이지 내가 모르는 그 불특정 다수는 무조건 낯섦과 경계 대상의 사람들, 차가운 관계의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가까워서 더욱 차갑고, 가깝다고 해서 받게 되는 낯섦이 더욱 섬찟하게 하지 않던가 말이다. 허수경의 아픈 사연들과 글들은 가깝기에 차갑게 베인 상처들인 셈이다. 글 속에 녹아있는 의지와 생각들로 앞으로의 일들도, 그리고 하나뿐인 아이 별이의 미래도 계속 계속 시리게 반짝이는 하늘의 별처럼 늘 어둠 속에서도 빛나길 바란다.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처럼, 늘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갖고 바라볼 터이니.

취향, 그건 사람들을 만나고 겪어내고 살아내고 인연이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좌지우지하는 무서운 선택력이다. 취향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라 영영 인연이 안될 수도, 영원한 인연이 될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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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의 일기장
전아리 지음 / 현문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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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라리 여고생 직녀

 직녀라는 아이.

가정환경도 딱, 평범한 아이(뭔가 특별함 없이 알콩달콩한 집안이 아닌 어디에나 잘 있는 아들 딸 차별 가정에, 부모의 사이도 썩 좋지 못한).

사고방식도 행동도 말투도 딱 그 십대의 전형적인 사고를 지닌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글 속에선 자꾸 날라리처럼, 혹은 너무나도 튀는 아이처럼 묘사한 부분이 오히려 내 눈엔 도드라져 보였다. 과연 그런가? 싶은, 저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응당, 누구나 좀 있던 그런 아이인데 말이다. 개구진 모습이 좀 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부탁에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그런 전형적인 악마랄까? 순진함을 지닌 날라리의 전형적인 모습? , 그런 캐릭터로 다가왔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글 속에 직녀라는 아이의 자기정체성을 찾음에 너무 특별했던 그 무언가의 매력점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면 천재작가라 불리는 작가는 그 점을 노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밍숭맹숭 하달까?

 

차라리, 내가 나의 스물 일곱이 아닌, 열 여덟, 아홉을 사는 딱 그 나이 때의 고딩이었다면 책 내용의 공감이 조금 증폭될까 싶은 상상도 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나도 직녀처럼 속으로는 딴에는 엄청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혹은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지만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정말 엉뚱하고 설익은 판단력의 결과인 나날들 뿐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너무 천재작가란 타이틀과 어린 나이의 작가란 점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읽어서일까? 크게 충격을 준, 혹은 달콤해서(말이 다분히 달콤한 것은 아닌) 좋았던 부분들이 없었기에 기대가 큰만큼 살짝 실망도 있었던 작품이었다.

 

아니면 정말 세상은 직녀라는 아이처럼, 무언가 자신만의 특별한(이름에서만큼이나 느껴지는 그런..^^;;) 일들과 환경이 주어지길 바라지만 실은 어렵게 어렵게 오작교가 이루어져야만 견우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특별해 보이지만 그 속엔 평범함이 깃들어 있어야 가능한 그런게 아닐까? 자신이 살아갈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도 평범하게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과도 같은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정말 뜻밖의 아주 사소하고도 평범한 일의 계기로 자신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직녀의 이름만큼이나 특별한듯하면서도 오히려 실은 그 속에 가득한 인물의 평범한 삶의 길이 바로 진득한 성장의 길이며 행복인 것처럼.

 

직녀가 바라보던 시선들이 귀엽고 이쁘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가정에 던지는 시선들이나. 딱 평범했던 날라리 여고생으로. 하지만, 귀여웠던 시선과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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