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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 왕을 꾸짖은 반골 선비들
정구선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2월
평점 :
현 정부에도 발칙한 처사가 끊이지 않길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얼굴없는 선비의 이야기 인가 싶은 일러스트다. 대쪽을 상징하는 대나무도 보이고, 상소로써 고했기에 붓과 먹도 보인다. 이 모든 상징성을 담은 표지와 이 책의 탄생시기. 왜 지금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많이 나올까? 그중에서도 왕을 꾸짖은 반골선비들, 처사들의 이야기를 다뤘을까? 당시에 흥행하는 역사물은 흔히 그 시대가 요구하는 행적이거나 인물이라는 이야기는 학교다닐 때 국사시간이나 부모로 부터 들어 익히 알 것이다. 이번에 나온 책도 그래서 흥미있게 읽었다.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왕에게, 아니 대통령에게 목숨걸고 간언할 처사가 있는가 말이다. 물론, 얼마전 미네르바 사건으로만 봐도 우리 현실을 잘 알 수 있지만.;;
현대에도 이런 실정인데, 과거 조선시대에는 처사들의 활동이 얼마나 더 살떨리는 일이었을까. 전체적으로 보면 왕이 올곧은 처사들을 궁궐로 불러 관직을 주고자 노력한 편지의 내용이 전부인 것으로로 읽힐 수 있지만, 조선의 '삭관탈직(또는 삭관탈작. 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 150쪽)'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곳을 보면 정말 살벌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환관 김처선의 예로 들었는데 세종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임금을 모신다. 하지만 임금이 바뀌면서 관노로 유배당하기도 관직에 나서기도 하고 직언을 하는 인물로 역사속에 기록되었지만 그러한 직언의 결과 연산군에 의해 직접 다리와 혀가 잘려 죽음을 당한다. 얼마나 끔찍한가. 김처선의 예 외에도 최명길, 박문수, 윤원형, 이경여 등 삭관탈직의 예를 든 부분을 따로 세 페이지 정도 두었는데 이 부분을 통해 나라를 위해, 임금을 위해, 간언하기 위해 처사로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는 길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의 길을 간 이들이 있었으니 처사로 살았기에 역사책에 자주 비중있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그들이 목숨걸고 간언한 덕에 조정이 바로 서고, 중재가 필요한 일에 견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정일 저자의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을 보면 당파가 분파되면서 그 안에 줄을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천 여명이 관직을, 살아서도 박탈 당하기도 하고 죽어서도 묘지가 파헤쳐지는 등 우리 역사의 피를 부른 현장을 생생히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이었다.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를 읽으면서 처사로 살기를 원했음에도 잘못 엮이면 그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는 민순과 최영경 선비의 이야기도 나온다. 역사책은 어려워서 읽기가 쉽지 않아도 이렇게 하나의 사건이나 주제를 작게 잡아 세밀하게 엮어낸 책은 읽기가 재미있고 나중에 읽는 것과도 잘 연결되어 재미있다. (물론, 단순 재미로만 읽는 것이 아닌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얼마 전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된 조카와 밤에 이야기를 하면서 잠드는데 자랑스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모, 토끼와 거북이 경주 말이야. 난 거북이도 잘못했다고 생각해. 정정당당하게 겨루려면 거북이는 토끼가 낮잠을 잘 때 깨워줬어야지. 그치?” 하면서 말하는데 순간, 이 아이 국어 시간에 아이들과 토론 수업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요즘 TV광고에 창의력이니, 논술교육이니 하면서 기존에 가졌던 동화를 거꾸로 생각하기 등등을 시키는 것 같은데, 논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교육도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 기존에 있던 우화나 동화를 사고방식을 달리한다고 해서 그게 똑똑해 보이고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싶다. 솔직히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주제는 있되 논점에 따라, 토론 주제로 던져준 명제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그 명제가 옳으려면 조건부가 만족해야 함을 먼저 일깨워 주어야 한다. 물론, 나이가 어리니깐 많은 ‘조건부를 만족한 상태에서만 어찌 어찌 이야기가 성립된다’라고 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요즘들어 근본적인 논점도 모른채 일단 주어진 말에 대해서만 집중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나도 한 때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 벼슬하지 않고 글만 읽는 선비는 선비일 뿐, 현실 부적응자처럼 묘사할 때를 종종 목격했었다. 아마도 실학사상이 대두될 때 그런 언급이 가장 많았던 것 같은데, 각 시대가 요구하는 논점에 따라 필요한 정보와 그 인물의 삶과 영향을 재조명하고 근본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요즘같은 때엔 더욱 절실히 조선시대 처사 같은 인물들이 요구되는 때에는 더더욱 말이다. 이곳에 처사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처사를 정책에 도움을 받고자 관직을 주고자 하는데에 임금의 노력 또한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무섭게 꾸짖는 그 처사들. 그들을 포용하는 포용력을 보면 실로 감탄이 난다. 그런데, 우리 현 정부는 모든 길을 다 막고 없애고 있으니.... MB정부가 들어서고 YTN 돌발영상 보던 재미도 없어지고, 시사투나잇 방송도 없어지고, EBS 명로진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 프로그램도 폐지되고 참 많이도 없어졌다. EBS는 English Broadcasting System 의 줄임말인지, 프로그램 편성표 보다 보면 그냥 한숨만 나오고....
"이 책의 진정한 창작자는 필자가 아니라 우리 역사일 것이다."라고 정구선 저자는 말했다.
우리가 행하고, 읽어내고, 만들어내는 그 모든 일들이 전부 우리에겐 역사로 새겨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