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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지옥
김인정 지음 / 아작 / 2026년 4월
평점 :
단편 소설집 <다정한 지옥>은 고전 문학을 떠올리게 하는
예스러운 문체와 옛날의 정서를 그대로 품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책장을 넘기는 가운데 어느새 독자들은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런 고전적 요소 외에도 신, 정령, 요괴와 같은 존재가 등장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안타까운 죽음, 배신과 복수와 같은
비극적인 주제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옛것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고전적인 틀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적인
특성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운치 있는 한옥의 마루에 앉아서 평행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책이다.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이미지는 바로 ‘꽃’이다.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금세 져버리는 꽃처럼, 이 책에서는
뜨겁게 타올랐다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뒤에 남는 먹먹함과 안타까움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인상적인 단편으로는 ‘화선’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내가 어릴 때 <인어공주>를 읽으며 느꼈던 그 처연하고
비극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내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이지만 결국 그 사랑 때문에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존재들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남는다.
해당화 정령은 하찮은 인간과 사랑에 빠지고
능력을 발휘하는 ‘비녀’라는 장치를 통해서 인간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비녀는 욕망에 쉽게 휘둘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런 인간을 사랑해버린 더 어리석은
정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씁쓸한 동시에 강렬했던 단편.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바로 <그리고 낙원까지>
였다. 찰나의 시간에 죽일 수 있고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검객들의 이야기. 이 작품은 무협과 로맨스가 결합된 형태로
복수와 배신 그리고 지독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진
매우 강렬하고 긴장감 있는 단편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사랑히게 된 주인공 설 혹은 설련의
이야기. 설은 자신을 포함하여 사랑의 욕망에 휘둘리는
자들의 마음을 “썩었다”라고 표현하며 경멸하지만 결국 자신도
그런 감정의 노예인 것을..... 어쩌면 이 모순적인 감정이야말로
“다정한 지옥” 그 자체가 아닐까?
“연꽃을 빼닮은, 작고 강인한, 숨죽여 피는 그 꽃에
심장이 뛰었다. 멈춰 있지 않은 것은 죽게 마련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썩게 마련이다.
생생한, 끔찍하도록 생생한 이 열기에
마음은 썩어버리겠거니.”
띠지에 나와 있는 표현 “우리는 왜 실패가 예정된
사랑에 매혹되는가! ”는 이 책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나를 파멸로 이끌 것을 알면서도
그 다정한 지옥에 뛰어든다. 그러나 그 강렬한 감정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일지도...
새하얀 눈밭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은 꽃처럼
피어났다가 한꺼번에 스러지는 찰나의 감정, 사랑
그 사랑은 우리를 비극으로 이끌지만
비극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언제든 우리는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 것이다.
밤새워 읽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단편소설집
<다정한 지옥>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