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평점 :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나는 독일 영화 <파니핑크>를
매우 좋아했었다. 주인공 노처녀가 스스로의 늙음과
애인 없음을 매일 한탄하며 좌절하는 내용이 반 이상인
영화다.
이 책 <굴욕> 속 저자의 표현 방식과 비슷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 이유는 그녀의 상태에 크게 공감을
했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주인공이나 이 영화를 좋아한
나나 마음속 상처를 끊임없이 핥으면서 고통과 굴욕감을
즐기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 <굴욕> 속에 등장하는 많은 변태들의
정신 상태와 나의 상태가 별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굴욕>의 저자 웨인 케스텐바움은 어떻게 보면
별로 안 친한, 매우 신랄하고 똑똑한 대학 동창 같은
느낌이다. 저자는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해당하는 ˝굴욕”을 아주 집요하게 파헤치고 분석한다.
책 속에는 “굴욕”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라크 군인들을 성적으로 모욕한 미군들의 이야기와
리어 왕에서 늙고 병든 리어 왕이 딸 코델리아를 잃고 난 후
느끼게 되는 비극적인 굴욕 그리고 흑인들을 잔인하게
공격한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괴롭힘 등등 여러 사례들은
거의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독자로서 책을 읽는 동안 얼굴이 몇 번이나 붉어지고
당황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화장실 변기나 장애인의
성적 행위에 대한 묘사 등은 다소 불쾌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 안의 불편한 느낌, 즉 ‘굴욕감’을
발견하는 과정이랄까?
그러니까 어쩌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조차 하나의
굴욕적인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서 쓰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대단히
불쾌하다기보다는, 노골적일 정도로 잔인하고 성적인 장면들과
매우 내밀한 사적 고백들을 따라가다 보면 굴욕감과 함께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만 이상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달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던 혹은 인상적으로 느꼈던
다른 부분을 짚어보자면 우선, 굴욕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 혼자 느끼고 지나가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권력과 사회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구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굴욕을 당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보며
또 누군가는 그 상황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우리의 본성에
의해서든, 혹은 어떤 목적에 의해서든, 누군가는 일부러
굴욕을 만들어내고 특정 관계 속에서 이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영리하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굴욕의 어떤 모습과
기능을 분석한다는 느낌이다.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으로도 느껴졌다.
‘언어가 침을 흘린다’ ‘대화가 똥을 싼다’ 등의
표현과 자기혐오를 ‘내면의 주름’ 등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이 굴욕감이라는 감정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책 <굴욕> 전체가 다소 이러하다. 상당히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 독자들이 어떤 상황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
“유명 인사의 스캔들에서 성욕과 배설과 혐오와
폭력의 현장까지, 부끄럽고 더럽고 괴로운 굴욕의 밑바닥을
지나 인간적 성찰에 이르는 여정”
- 책 표지에서 -
내 생각엔 이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이 글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깜짝깜짝
놀라면서 읽어 내려가는 가운데 나 혹은 우리 모두
즉 인간 자체의 본성, 본질에 접근하게 된다. 그 순간 느껴지는 묘한 내적 해방감과 자유로움.... 다른 독자분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대단히 궁금하다.
.
#굴욕 #웨인케스텐바움 #문학과지성사 #인문학 #인문에세이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