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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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인생을 이야기라고 한다면 주인공 파이 파텔의 인생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파이 이야기]에서는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향하던 배를 타고 있던 중, 배가 난파를 당해 겨우 살아남는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파이 이야기]는 그가 인도에 머물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파이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동물원에서 다양한 동물을 보며 자랐고 그들의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게 된다. 매우 영적인 꼬마 파이가 여러 동물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도 어릴 적에 동물원에 가면 일종의 환희? 혹은 감격? 을 느끼곤 했으니까.

책이 본격적인 이야기, 즉 배가 난파를 당하고 파이가 리처드 파커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겨우 살아남는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라는 것이다. 매우 영적인 소년 파이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두루두루 탐색을 하다가 결국 가톨릭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함께 믿게 된다. 세속적인 다른 가족들은 파이의 그런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종교에 대한 파이의 열정은 대단하다. 한 예로, 파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 (위대하고 군림하고 불멸하는)와 예수의 이미지 (박해받고 굴욕당하고 결국 죽는)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신부님과 집요한 토론 배틀을 벌이다가 문득 깨달음과 믿음을 함께 얻는다. 논리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과 종교라는 부분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이었다.

신과 종교에 대한 부분이 다소 많지 않은가?라고 어리둥절할 때쯤 본격적인 파이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70년대 당시 인도의 집권당이 결국 독재를 할 것이고 나라가 불안해질 거라는 예감을 느낀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다. 배에는 가족들뿐 아니라 미국의 동물원에 팔려갈 예정이던 동물들까지 함께였다. 그런데 가던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배가 요동을 치게 되고 한 선원에 의해 바다로 내던져진 파이는 다행히 구명보트 위에 안착하게 되지만 결국 배가 가라앉으면서 파이 외 다른 가족들은 희생을 당하게 된다. 구명보트 위에는 파이뿐 아니라 거대한 몸집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수컷 하이에나, 그리고 다리를 심하게 다친 얼룩말과 기진 맥진한 암컷 오랑 우탄도 함께 머무르게 된다. 망망 대해에 떨어진 파이,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운명과의 사투를 벌이는 파이의 모험은 이제 시작된다. 파이의 치열한 내적 갈등, 즉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조금 지루하고 건조해졌을 지도 모른다. 홀로 바다를 떠다니며 구조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소년의 반복되는 일상을 상상해 보자. 하지만 리처드 파커라는 존재와 대치하고 공존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기에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파이는 운명과의 사투를 벌인다. 언제 호랑이가 덮칠지 모르고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모른다. 햇빛은 쨍쨍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러나 이렇게 암울한 상황이 연속됨에도 불구하고 파이는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친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 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나는 죽지 않아. 아멘. ˝

겉으로 보기엔 호랑이와 함께 운명의 사투를 벌이는 한 소년의 모험 이야기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조금 더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의 개입이 항상 있다는 것?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아니면 우연처럼 발생한 일들이 마치 짜 맞춘 것처럼 필연적 운명이라는 퍼즐을 완성시킨다는 것.. 등등. 한 편의 서정시 같은 파이 이야기,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독자들은 파이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의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살아남아 파이 곁에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에게 위험한 존재였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삶을 갈구하게 해준 고마운 인연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고!"

사실 책을 끝까지 읽게 되면 독자들은 해석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론이 갑작스레 등장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큰 물음표가 찍힐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다소 과장될 수 있고 스토리텔링도 예술의 한 분야라고 봤을 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각색되건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한 치 거짓 없는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아름답게 포장된 이야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여긴 영적인 소년 파이를 떠올려 봤을 때 날 것 그대로의 진실보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그 나름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파이와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책을 덮었다.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주었던 판타지 + 모험 이야기 [파이 이야기]를 꼭 소장해야 할 영미 소설로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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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의 시대 우리 집 - 레트로의 기원
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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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인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가끔 눈에 띄는 단독주택이나 한옥을 발견하곤 한다. 사는 게 있어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집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거란 생각에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언제 지어졌고 어떤 양식일까? 문득 궁금해진다고 할까. 집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겐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고된 하루 끝에 몸을 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도 한 것. 각자의 개성에 따라 집은 여러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터, 특정 시기에 지어진 집들은 더욱더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과거의 문화유산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저자 최예선씨는 직접 답사하고 리서치하며 실제로 살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건축 유산을 밀도 있게 탐구한다. 도서출판 모요사에서 갓 출간된 그녀의 책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은 격동과 변화의 시기였던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 우리네 집이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옛것에서 새것으로 넘어오기까지 과도기였던 이 시기가 바로 레트로의 기원이라 말하는 그녀, 저자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처럼 우리를 그 현장으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과도기 시대 집의 정원 풍경은 어떠하였을까? 아파트 속에서도 화분을 여러 개 가꾸며 푸르름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우리. 당시에도 꽃과 나무를 사랑하던 문인들은 정원 가꾸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특히 파초를 좋아했던 문필가 이태준이 머물던 성북동 집의 정원인 수연산방에서 자라나던, 흐드러지는 파초들은 이태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특히 서양 문화에 탐닉했던 작가 이효석이 가꾼 정원은 '잘 익은 살냄새'가 나고 '비밀을 가진 몸 냄새'를 풍길 만큼 실재하는 감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 즉 삶과 영감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꽃들이 하늘거리는 수연산방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자신만의 박물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물과 글자와 옛이야기와 지나간 시절의 매혹적인 정조를 모두 담아두던 '호기심의 방(분더카머)'이다. 파초 아래 의자를 놓고 앉아 남국의 정취를 몽상하는 비일상의 공간이자, 탄생과 성장과 소멸을 보며 글을 쓰게 하는 영감의 장소다"

가끔 도시의 변두리에 지어진 작은 성당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때가 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이지만 왠지 우리 전통 가옥인 한옥을 떠오르게 만드는 건물 라인에 눈길이 가곤 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1930년대쯤 지어진 대다수의 성당 건물은 서양식 건축과 우리 전통 구조가 혼합되어 지어진 것이라 한다. 어쩐지 벽돌 건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더라니... 특히 벽돌 건축의 걸작이 명동 성당이라 손꼽는 저자.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건축물인 명동 성당은 20세기 전에 완성되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장엄함과 숭고함의 산물이라고 한다.

"벽돌은 글과 분명 닮은 점이 있다. 집착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벽돌은 흙과 불에 대한 집착이며, 벽돌집은 집착이 완성한 건축이다. 흙과 불이 빚어낸 빨강의 산물. 벽돌은 뼈대가 되는 동시에 외피도 된다. 벽돌을 쌓아 올리며 집은 힘을 갖고 무너지지도 불타지도 않는 갑옷을 입는다. 안과 밖이 같은 질감, 같은 색깔이다"


우리 전통 가옥의 구조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고 새로운 공간의 창출로 이끌었던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일제 강점기의 예술가였던 김유방이었다. 그는 근대기 주택 개조론의 첫 문을 연 사람인데, "과연 우리의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해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엄청난 부호였던 그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몸을 담그다가 마침내 건축이라는 예술 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당시 여성들의 노동 공간이었던 부엌과 제사를 지냈던 대청을 언급하며 해방되지 못한 관습과 변화해야 할 마땅한 제도라고 언급하는 김유방. 그는 서구 부르주아 저택이 보여주는 수십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공간에 집중하며 집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못하면 부부와 부모 자식도 별거해야 한다는 극단적 선언을 하기도 한다.

"삶이 달라져야 집이 달라지며, 집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 (...)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열망이 끓어올랐던 김찬영(김유방의 본명)이라면 당연히 건축이라는 분야에 푹 빠져들 만했다. 모던 시대가 담보하는 신 주택과 신가 정의 풍경, 따듯하고 단란한 근대 가족이 표상하는 풍경을 그가 열렬히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에 지배를 당했던 굴욕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모던 시대의 삶과 공간에 대한 그동안의 분석이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30년 당시는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물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창조성과 감각에 의해 새로운 건축 양삭이 도입되고 그에 따라 우리 삶의 방식도 180도로 바뀌었던 시대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변하고 집의 구조와 집을 채우는 것이 달라지듯, 집이야말로 삶의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저자 최예선.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전통과 모던이 충돌하는 집과 그 속의 여러 가지 것들을 보여주면서 모던 시대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모던 시대 집과 소유주들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아련한 향수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미래의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상당한 자료와 사진 등을 통해서 레트로의 기원이 된 모던 시대의 집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는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을 꼭 읽어봐야 할 인문학 서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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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시체를 보는 사나이 1부 : 더 비기닝 세트 - 전2권
공한K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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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

옥상에서 떨어진 듯한 여자,

경찰서 화장실에서 목을 맨 경찰관.....

이 시체가 모두 나에게만 보인다고?

설정이 대단히 신선하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시체 환각을 경험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아닌 밤중에 시체를 경험하는 남자의 인생은 과연 어떨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듯하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닷없이 닥쳐오는 시체의 환각에 심장이 벌렁거리고 매일 두려울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예전에 한 대학 후배가 웹 소설의 재미에 푹 빠져 거의 밤을 지새운다고 하더니, 이렇게 환상적이고 독특한 이야기들 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구나 싶다.

독자 별점 9.92점에 네이버 웹 소설 베스트 리그 TOP 5에 속하는 영광을 누린 소설 [시체를 보는 사나이]는 독자의 요청 쇄도로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공한 k 작가는 10년을 교육 사업 마케터로 일하면서 시인을 꿈꾸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웹 소설을 쓰게 되었다니, 남다른 상상력과 추진력이 부럽기만 하다. 책 소개 글에 나와 있는 것처럼, 평소에도 "상관없어, 상상하면 다 내 거니까!"를 외치며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체를 보는 사나이]의 주인공 남시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냥 무심코 길을 걷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평범한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일종의 환각이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이 진짜 시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오히려 허위 신고 죄로 경찰서에 끌려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끌려간 경찰서의 화장실에서도 목을 매단 채 죽어있는 한 경찰관의 시체를 보게 되는데,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늘을 날아다니고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하는 히어로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히어로가 등장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는 식으로 미리 그들의 죽음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히어로 나타났다! 평범한 공시생에 불과했던 주인공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 이유는 뭘까? 세상 모든 히어로들이 그렇듯, 그도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줄 운명을 타고난 게 아닐까? 그런데 알고 보니 주인공 남시보의 할아버지도 시체 환각을 경험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남씨 집안의 초능력을 특별한 주인공이 물려받은 듯하다. 그러나 재능이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일 수도 있는 법, 시체의 환각을 보기 시작한 뒤부터 남시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경찰서에 다녀온 후 또다시 시체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 남시보. 이번에는 공무원 학원 옥상에서 어떤 여성이 뛰어내려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던 여성을 사전에 구해내게 되고, 그녀가 허무하게 살해된 아버지 사건 때문에 절망하여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름이 소담이라는 그 여성을 도와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와중에, 남시보는 자신이 거리에서 목격한, 피 흘리며 죽어가던 파란 셔츠 사내의 죽음과 택시 기사였던 소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경찰서 화장실에서 목격한 경찰관의 죽음이 묘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경찰서에서 쫓고 있는 주요 용의자가 바로 자신에게 잘해줬던 유일한 형사, 민우직 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경찰과 형사들 사이에선 묘한 분위기가 맴돌고, 민우직 형사가 범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모함에 의해 이 구렁텅이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시보는 소담과 민형사의 도움을 얻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애쓰게 되는데......

다른 사람의 시체를 미리 볼 수 있다면? 그것도 모자라 자기 자신이 죽은 모습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사는게 너무나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만약 나라면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릴 것 같은데, 소설 속 주인공 남시보는 대견하게도 이 능력을 이용하여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비극에서 구해낸다. 비전형적으로 보이지만 전형적인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재는 상당히 신선하고 독특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거의 대화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약간은 느슨한 감이 없지 않다. 짧게 요약해도 되는 장면은 묘사나 서술 방식을 통해서 빨리 지나갔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추리와 스릴러 그리고 환상이 적절하게 혼합된 소설 [시체를 보는 사나이] 재미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장르 소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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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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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방금 좀도둑질로 경찰에 잡혀가셨어.

경찰들이 같이 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 때문에 집단 자살하기 일보 직전인가 봐.

짐 존스(미국의 사이비 종교 교주-신도들과 함께 자살) 였나?

그 자식도 밀리 고가티 여사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야!"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는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한 가족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다루고 있다. 고가티 가의 3세대, 즉 할머니, 아빠 그리고 손녀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엔 좌절과 사랑 그리고 용서와 우정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녹아있다. 아일랜드인 특유의 꼬집고 비트는 유머가 가득 있어서인지 각 등장인물들이 남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주인공들 모두가 어떤 결함을 갖고 있긴 하나, 너무나 인간적이라 나중에는 결함이 보이지도 않게 되는 소설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속으로 들어가 본다.

괴짜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웃집에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은 다정한 할머니, 83세 과부 밀리 고가티가 상점에서 유유히 물건을 훔치고 나오다가 적발되고 체포되기까지 한다.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아들 케빈은 친구를 만나던 와중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고, 엄마가 저지른 만행을 알게 된다. 케빈은 엄마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자, 경찰과 협상을 하는 척하며, 그녀의 휴가 계획을 취소하고 실비아라는 미국에서 온 여성을 도우미로 고용하여 엄마를 감시하게끔 한다.

자신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는 독단적인 아들 케빈의 처사에 화가 난 고가티 여사는, 이제 곧 오게 될 도우미를 괴롭히려고 작정한다. 그런데 너무나 매력적이고 친절한 미국 아가씨 실비아에게 마음을 몽땅 빼앗겨버리는 고가티 할머니. 결정적으로 고가티 여사가 낸 차 사고를 떠안아준 것을 계기로 이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된다. 고가티 여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착한 실비아에게 거금을 빌려주게 되는데... 아뿔싸! 입속의 혀처럼 다정하게 굴던 이 미국인은 아일랜드를 갑자기 떠나버리고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가티 여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편,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아들 케빈, 그는 온갖 문제를 껴안고 씨름을 하고 있다. 가족은 안중에도 없고 경력을 쌓느라 온 사방 팔방을 돌아다니는 아내 그레이스와의 결혼 생활은, 얼음장 위를 걷든 위태롭기만 하다. 예쁘고 인기 많은 쌍둥이 언니 누알라에게 은근히 괴롭힘당하고 비교당하는 에이딘은 세상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가족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에이딘은 자신을 기숙사 학교로 보내려는 것을 깨닫고 부모님이 아끼는 그림과 침대에 계란 폭탄 세례를 퍼붓는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끌리는 걸까? 시한폭탄 같은 에이딘은 케빈에게 골칫덩어리인 고가티 할머니에게 유일하게 마음을 연다.

이 책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는 어떻게 살아야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한다. 아무리 골치 아픈 짓을 저지르더라도 가족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인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100% 완벽하게 행동하는 프로그래밍된 A.I. 가 아니다. 실수하고 용서하고 용서받는 행위를 통해서 서로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고가티 할머니가 제일 사랑스럽긴 하나, 등장인물 가운데에서 특히 에이딘에게 마음이 끌렸다. 누알라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끼고 가족을 비롯한 세상이 자신을 계속 괴롭힌다고 느끼는 반항아 에이딘. 그런데 에이딘은 참... 바게뜨 빵 같은 아이다. 겉으로는 딱딱하고 언제 폭발할지 몰라도 속은 정말 여린 아이다. 예민한 청소년 시절,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감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보인달까? 나도 청소년기에 좀 그랬기에 정말 이해가 간다.

실비아의 조카인 션에게 한눈에 반했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에 처하게 된 에이딘, 실비아에게 큰돈을 빌려주었지만 떼먹힐 위기에 처하게 된 고가티 할머니.. 이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닥친 인생의 시련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골치 아픈 가족 이야기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코믹한 전개 덕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엉망진창에 소란스럽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이 고가티 삼대의 좌충우돌 사건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미소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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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슐리외 호텔 살인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1
아니타 블랙몬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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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 이후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장식한

‘후더닛 (who done it)의 계보를 잇는 여성 작가,

아니타 블랙몬의 색다른 추리 소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이후 오랜만에 '후더닛', 즉,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소설을 읽게 된 듯하다. 그것도 완성도 높은 정통 추리 소설을 말이다. 사랑과 음모, 질투와 배신이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이 소설은 드라마적 요소가 풍부할 뿐 아니라 1930년대에는 다소 잔혹하다 싶은 살인 사건으로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저자 아니타 블랙몬이 질병으로 일찍 사망하여 추리 소설은 이 책을 포함하여 2권 밖에 없다니 아쉽기만 하다. 뚜렷한 존재감으로 빛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애들레이드" 여사가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좌충우돌하는 것을 더 많이 보고 싶은데 말이다.

이 책은 50살이 넘은 노처녀 애들레이드의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녀는 호텔의 터줏대감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잔소리와 간섭을 겁나게 하는 바람에 "싸움닭"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큰, 정 많은 큰 이모 같은 여성이다. 매일 아침 호텔 로비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호텔에서 일어나는 가지각색의 일들을 알게 되는 애들레이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색 양복을 입은 미스터리한 남자가 자신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초록색 안경집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가져다주는 남자,, 제임스 리드라는 이름의 이 작고 보잘것없는 남자의 정체는 뭘까?

독자들은 다소 까칠하지만 정 많은 그녀의 시선으로 호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호텔 여주인 소피 스콧은 자신보다 열 살 넘게 어린 남자 시릴 팬처와 결혼했는데, 애들레이드는 나이 많은 소피와 결혼한 시릴이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여기고 그를 엄청 싫어한다. 메리라는 30대 후반의 미망인은 술을 취한 채 바람둥이와 어울리는 조카 폴리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고 바람둥이에 미남인 스티븐 랜싱은 여러 여인들을 꼬시고 다닌다. 캐슬린 어데어라는 젊은 여인은 병약한 어머니를 모시느라 자신의 인생이 없고 로티 모스비라는 여성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을 가진, 경마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도박꾼이다. 작은 호텔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잘 만들어진 아침 드라마 같은 호텔 사람들의 인생극이 펼쳐지던 그때, 애들레이드의 인생에 한 잔혹한 살인 사건이 날아들게 된다. 그녀가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자신의 호텔방으로 들어오던 그 순간 그녀는 샹들리에에 매달려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안경집을 수시로 찾아다 준 그 회색 양복의 남자!! 제임스 리드라는 이름의 그 남자가 양쪽 귀밑까지 목이 베인 채 샹들리에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것! 경찰이 출동하고 살인 수사과 반장인 호머 버니언 경위까지 등장하여 호텔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인으로 몰아가며 괴롭게 만들던 그때, 자살로 위장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도대체 이 호텔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평범해 보이던 호텔 사람들의 비밀이 뱀이 허물을 벗듯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히 독자들은 스티븐 랜싱이라는 이 바람둥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밤중에 의치가 빠질 정도로 비명을 질러댈 일이 생기고 가발이 벗겨진 채 창문 처마에 거꾸로 매달리는 등, 자꾸만 이상한 일에 휘말리는 애들레이드의 곁에 경찰보다도 더 빨리 스티븐 랜싱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장소에 남들보다 일찍 나타나는 그가 혹시 연쇄 살인마?? 해답은 책을 끝까지 읽거나 남들에 비해 눈치 빠른 독자의 몫!!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잘 쓰인 추리 소설은 여러 덕목들을 갖추고 있다. 훌륭한 문장력에 탄탄한 스토리라인이라는 메인 요리와 예측할 수 없는 반전과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이라는 양념 두 스푼! 그리고 번역이 잘 되어 있다면 금상 첨화인데, 이 [리슐리외 호텔 살인]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잘 차린 밥상 같은 느낌이다. 1930년 당시에 쓰였다고는 믿을 수 없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복잡한 줄거리에 정의감이 넘치지만 실수투성이의 개성만점 캐릭터가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음산하지만 조용하고 고리타분한 호텔에 갑자기 일어난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인 사건!! 마지막까지 혼전을 거듭하던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살인자를 내놓으며 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과연 애들레이드는 끝까지 무사히 이 사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반전과 유머 그리고 잔혹한 살인이 뒤섞인 정통 미스터리를 읽고 싶다면 지금 이 책으로!!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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