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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 지워진 이름들 ㅣ 사이드미러
김준녕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9월
평점 :
김준녕 작가의 오컬트 장르 소설 “제”는 미국이 주 배경이지만 한국의 정체성이자 뿌리인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하고 있다. 완전히 미국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폐쇄적인 공간 “엔젤타운”에서 벌어진 기묘하고 초자연적 공포를 다루는 소설 “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요 인물인 “준”과 “한”에 대해서 말하자면, 무당 가문 출신인 준은 신내림을 피해서 미국으로 떠밀리듯 도망쳐온 아이였고 반면 한은 친일파 조상 덕분에 부과 권력을 동시에 거머쥔 채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아온 아이였다.
기독교 근본주의 색채가 강하고 백인 위주의 공간이었던 엔젤타운에서는 다른 인종에 대한, 특히 “준”과 그의 가족에 대한 학대와 폭력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러나 어른들은 다소 은밀하고 아이들은 좀 더 노골적이다. 그러다 보니 준의 몸에는 멍이 갈수록 늘어나게 되고..
한편, 한과 한의 부모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애쓴다. 백인들의 준과 그의 가족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못 본 척 넘겨버린다. 오히려 백인들과 한통속이 되어서 그들을 괴롭히는 일에 동참하는 그들... 마치 한국인이 서양인이, 아니 백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은 역시 친일파의 후손이었으니....
그러던 어느 날 한은 준에게 빙의하여 그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되고,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들이 준의 몸에 내려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과연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오컬트와 호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완전 꿀잼을 약속할 수 있는 책 <제> 거기에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메시지까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대목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섬뜩한 이미지를 통해 살아나는 초자연적 공포!
숲속 호숫가에 묻혀있던 비밀이 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순간 경악하는 아이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내장 터진 개구리 비 등등 소름 끼치는 이미지와 묘사를 통해서 “호러”의 절정을 맛보게 해주는 소설이다.
무속과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
한국인에게는 무속이라는 민속 신앙이 있다.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친숙한 무속이지만,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와 정통으로 충돌하게 되면서 “제물을 바치는 악마 의식” 정도로 돌변하게 되는데... 그런데 입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온갖 폭력과 차별을 자행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더 악마로 보이는 점!
역사를 통해 증명되는, 미국의 폭력과 인종 차별
미대륙 횡단 열차를 깔았던 중국 노동자들에게 행했던 만행과 학살.. 죽여서 빼앗으면 된다는 양아치스러운 사고방식이 미국인들의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도저히 사랑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설에서 한과 민경의 사랑이 결실을 맺고 그들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민경과의 결합이 마지막 퍼즐의 한 조각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 독자들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의 이야기를 마지막에 품고 있다는 사실!
“역사는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사라져.” (367쪽)
단지 한과 준 그리고 민경의 개인사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소설 <제>
우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미국 등에 의해서 주도된 남북 분열로 큰 고통을 겪어 왔다.
이 와중에 한국인 대부분은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일본의 앞잡이로 또는 서양을 대변하면서 같은 민족을 괴롭히고 더 나아가 말살시키려 한 한국인들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본다.
"그들은 죄인이고, 지금도 그렇게 행동하는 자들은 죄인이다" 라고 마치 이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준과 준의 할아버지가 반복해서 한에게 이렇게 말하듯이...
“더러운 피...”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