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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원고 2025
이준아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3월
평점 :
" 내 집을 갖고서도 더 가난해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
그런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우리는 완전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아본 독자들은 아마도 알겠지만 삶이란 것은 전혀 완벽하지 않다. 각종 질병과 공포증은 삶의 희망을 꿈꾸어야 할 젊은이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사장에게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괴상한 테러를 가한다. 물론 이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현실이 이보다 더 비참할 때도 있다. 나이를 먹고 보니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또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달까?
이 책 사계절 출판사의 <두 번째 원고 2025>는 신춘문예를 막 통과한 작가들의 '두 번째 글'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신인들의 작품들이지만 현실에 깊게 뿌리내린 단단함과 우리 주변 이웃들의 사연 같은 친숙함이 묻어 나오는 좋은 글들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은 가장 어려운 일, 즉 "평범한 일상을 살아나간다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거창한 주제를 중심으로 쓰인 글이라기보다는, 언젠가 지인에게서 들었음직한, 혹은 신문이나 인터넷의 독자 사연 후기에서 한 번쯤 읽었음직한 글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준아 작가의 <구르는 것이 문제>에서는 당뇨를 앓고 있는 여자와 바퀴 공포증이 있는 남자의 연애 이야기가 펼쳐진다. 차를 몰지 못하는 남자와 임신에 문제가 있는 여자라니... 어쩌면 대 환장 파티가 펼쳐질 수도 있겠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데.... ( 중고 유모차를 밀어서 비극적 사건을 막아내는 장면이 마치 영화 속 슬로 장면으로 느껴졌다는... ) 김슬기 작가의 <에버 그로잉 더블 그레이트 아파트>는 철근을 쓰지 않은 신소재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과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봐 그것을 은폐하려고 전전긍긍하는 세력들을 묘사하는데, 집값에 초민감한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묘사한 단편 같아서 약간 소름이었다.
임희강 작가의 <러브 버그 물 풍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가게에 테러를 가했던 의문의 남자를 잡고 나서 구구절절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다가 가게 사장은 자신의 사연도 풀어놓기 시작한다. 대단히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도 불행은 올 수 있지만 가뿐히 극복할 것 같다는 희망을 느끼게 한 작품. 김영은 작가의 <하루의 쿠낙>은 절망 속에서 뒹굴었던 내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 작품. 이유를 딱 꼬집을 순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성장통으로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의 고뇌가 쿠냑을 통해 느껴졌다. 권희진 작가의 <머리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도 재미있었는데, 거리를 두고 살면서도 서로에 대한 안부와 염려를 잊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등단한지 얼마 되지 않는, 말하자면 따끈따끈한 붕어빵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 잘 읽었다. 불행을 이야기하지만 너무 심각하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우리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듯한 소설집이다. 약간 희극적인 요소들 ( 특히 "구르는 것이 문제" ) 이 있어서 재미있기도 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희로애락, 우리는 기뻐하다가도 성내며 슬프게 울다가도 갑자기 웃기도 한다. 힘든 일이 생겨 절망하던 순간 친구가 보내온 유머짤에 한바탕 웃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그런 느낌?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두 번째 원고 2025>는 평범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보내는 작고 단단한 위로라고 볼 수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마주치게 되는 문구도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다.
" 결코 너그럽지 않은 현실에서 언제나 웃음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하여 당신이 작게 미소 짓는 순간, 마침내 가뿐해지는 일상. 평범과 정직의 힘을 다룬 다섯 편의 소설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