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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
윤정인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3월
평점 :
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여기에 수십 개의 아름다운 책방과 도서관을 담은 예술작품이 있네요. 제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바로 그것입니다. 예쁜 사진이 있거나 그림이 있어서 그런 거라기 보다는, 우리 나라에 이렇게 멋진 서점과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이 책 한권에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거든요. 이 책에서 저는 우리의 미래를 점쳐볼 수도 있었고 나 자신의 미래도 점쳐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이 훌륭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개인이 공동체 의식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구요.
먼저 부산에 있다는 한 서점과 도서관에 대해 읽고 엄청 감명 받고 엄청 반가웠습니다. 저에게 감동을 준 서점은 바로 인디고 서원이었습니다. 물론 제 자신도 깊이 있고 넓은 범위의 독서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빈약한 독서량이었습니다. 물론 입시가 중요한 아이들이라 시간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멀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한창 뇌가 발달할 시점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인문학을 접하고 토론하여 거기서 깨달음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항상 들거든요.
그런데 이 인디고 서원에서 우리 청소년의 미래를 발견한 겁니다. 이 인디고 서원을 운영하는 허아람 대표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서점을 보고 서점이 단순히 책이 팔리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토론도 하는 문화가 있는 공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 서점에서 “ 저자 초청 토론회,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 수요 독서회, 인문교양지 발행 " 등등의 청소년이 중심이 되고 청소년들의 독서와 토론이 기본이 되는 서점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 정세청세 ” 라는 인문 토론 프로그램도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뜻은 ‘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 라는 의미인데 즉, 단순히 책을 읽고 감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얻은 것을 바탕으로 실제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함께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씨앗에 물을 주면 그게 자라서 새싹이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 같다고 느꼈지요. 그런 서점이 부산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반가웠던 포인트는 바로 추리문학관에 대한 소개글 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저는 부산에 혼자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그동안 바빴던 제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었지요.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기 보다는 호텔에서 뒹굴거리며 쉬거나 바닷가에 가서 해변을 거닐며 고독을 씹을 예정이었죠.
그런데 제가 그때 들고 간 부산 여행가이드북에 추리문학관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때도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많은 저는 버스를 타고 추리물 전용 도서관이 있다는 그 달맞이 언덕으로 올라갔지요. 가다가 중간에 잘못 내려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서관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안 갔으면 큰일날뻔 했지요. 왜냐면요... 그 추리문학관은 엄청 서늘했거든요. 아주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인물을 담은 액자들과 그들의 작품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면서 이리 저리 책을 구경할 수 있었죠.
나중에 나이 들어서 추리 + SF 전용 도서관을 세우고 싶은 저에게 그곳은 저의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아 ! 이런 구조나 이런 책들로 도서관을 채우면 되겠구나 하는 구도가 머리 속에 그려졌습니다. 마치 현재의 제가 미래의 저를 만나는 환상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그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도서관은 바로 느티나무 도서관이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어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 대도시의 혼란스러운 도로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살아가나? 과연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 라는 생각이 든다는 고백을 토로하셨죠. 그럴 때 마다 우리에게는 쉬어갈 편안한 공간이 하나쯤 필요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느티나무 도서관이야말로 휴식이 필요할 때 자신의 의자를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가 쪽 나무 벤치에서 오순도순 책을 보고 있는 모녀의 모습과 1층 구석에 있는 ‘ 골방 ’ 이라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들... 도서관의 내부는 마치 아이를 안아주는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른 도서관과는 다르게 음식물 반입 금지나 정숙과 같은 규제가 없어서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토론할 수도 있고 그림책에 점자를 붙여서 시각 장애를 가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단서만으로도 책을 찾아주는 사서들의 모습에 감동까지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 책마을 헤이온와이 ] 에 대한 내용입니다. 짧지만 가장 강렬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 리처드 부스 ' 라는 주인공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헌책을 수집하여 100만권이라는 책을 소유한 뒤 영국 웨일스 지방에 정착합니다. 처음에는 괴짜로 여겨지지만 점차 이 괴짜로부터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이곳은 책 관광 마을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죠. 나중에는 이 주인공은 이 마을을 ‘ 헤이온 왕국 ’ 으로 선포하고 ‘ 서적왕 리처드 ’ 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바람직한 결과라는 생각이 드네요. 매해 5월 ‘ 헤이 페스티벌 ’ 이 열리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유명한 저자들과의 만남을 갖는다고 합니다.
내년 목표는 영국 웨일스에 가는 걸로 해야겠습니다. 이 괴짜 서적왕이 어떻게 마을을 세웠는지 벤치마킹을 좀 해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