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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에서 협찬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왜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바움가트너의 고백은,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혹은 이미 겪고 있을 “삶의 진실”을 다룬다. 삶은 아픔의 연속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영원히 잃게 되는 일, 무너지는 몸과 희미한 기억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일, 그리고 여전히 삶이 우리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때마다 다시 용기를 내야 하는 일 등을 이야기하는 소설 [ 바움가트너 ]
작가 폴 오스터는 소설 [바움가트너]에서 노년이라는 시점을 아주 사적인 목소리로 표현한다. 일흔을 넘긴 자신의 분신인 주인공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그 나이대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우울, 과거의 기억과 회한 등을 우리 앞에 조용히 펼쳐 놓는다.
어느 봄날의 작은 사고에서 시작되는 소설 [바움가트너] 수시로 찾아오는 건망증, 신경을 약간만 쓰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는 미끄러짐과 같은 사고 그리고 엉뚱한 곳에 물건을 놓아두는 사소한 실수들 등은 주인공을 자꾸만 과거의 시간으로 끌고 들어간다. 지금은 곁에 없는 아내 애나를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와 함께 했던 눈부신 나날들, 그리고 그녀가 떠난 후 살아있었으나 사실은 늘 죽어 있었던 시간들.
과거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때마다 마치 아들의 과거를, 아내의 흔적을,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지우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바움가트너. 어쩔 수 없는 상실이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독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삶이란 매일 조금씩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수십 년이 순식간에 스쳐간 듯 느껴질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제 남은 시간조차도 결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상실만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은 우리가 끝이라고 여기는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말하기도 한다. 한 젊은 여성 학자가 그녀의 유고작 들을 연구하고 싶다고 찾아오게 되면서 바움가트너는 처음으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글로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의 이야기도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바움가트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대신, 그가 살아내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삶이라는 불완전함을 견디고 기억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이 책 [바움가트너]는 우리가 언젠가는 만나게 될 삶의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때로는 너무 느리고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깊고 넓은 바다가 더 느리듯 어쩌면 노년의 느리고도 깊이 있는 삶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억과 회상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 [바움가트너]
“기억하라, 이 순간을. 지금 네게 일어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