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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 모든 장소
채민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이방인 생활자이자 건축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의 새로운 발견, 익숙한 공간으로의 모험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몇 년 전에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민박을 했었는데, 몇 백 년 된 낡은 건물에 열쇠로 문을 여는 방식 등 현대화되지 않은 건물과 공간 때문에 많이 당황했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런 것일 뿐, 실내는 전문 디자이너가 연출한 것처럼 대단히 세련되고 감각이 있었다. 건물뿐 아니라 바깥에 테이블을 둔 카페에는 밤낮없이 사람들이 북적북적했고 햇볕이 강렬히 내리쬐는 광장에는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가득해서 뭔가 인간적인 느낌이 넘쳤다. 건물은 낡아도 삶은 여유롭게 즐기는 느낌이었달까?
이 책 <모든 날 모든 장소>는 연구원으로 미국에 1년을 머물러야 했던 한 건축 기자의 눈으로 본 미국의 공간과 건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공간과 건물을 통해서 본 미국의 문화와 생활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통의 에세이는 인간관계나 특정 사건에서 비롯된 에피소드 위주이지만 이 책에는 아파트, 학교, 놀이터, 다이너 등등 공간과 건물에서 느낀 미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등장한다. 원래 스스로의 단점과 장점은 자신이 잘 못 보는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바라본 한국의 장단점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미국에 대한 새로운 느낌도 좋았지만 한국에 대한 재발견이라는 점도 신선했다.
이 책은 "집"에서부터 "미술관"까지 우리가 늘 머무르는 공간에서부터 가끔 찾게 되지만 예술적 영감과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공간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우선 미국에도 "아파트"라는 공간이 있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마치 호텔과 비슷한 구조에 우리나라처럼 주위에 편의 시설이나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면에서 아파트가 거주시설로 선호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너무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삶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공부를 하러 간다는 목표의식이 확실하게 설정된 곳이고 공동체에 개방이 되지 않는 곳도 많은 다소 폐쇄적인 장소이지만 미국에서 학교는 아이들이 여러 체험을 하면서 놀이를 통해 학습을 하는 곳, 그리고 주말마다 장터가 열리면서 마을 사람들과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는 곳이라는 개념이 더 컸다. 학교에서 여는 여러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자본주의의 첨병을 달릴 것 같고 개인주의가 너무나 심각할 것 같다고 느껴졌던 미국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이 잘될 수 있는 조건화가 되어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삶에 대한 관점,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공간 중에서도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품목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 슈퍼마켓과 누구든지 가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다이너라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식재료가 풍부하게 있는 미국 슈퍼마켓, 그리고 밥하기 싫을 때 그냥 나가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다이너라는 공간. 나중에 혹시나 미국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다녔던 한국 생활에 비해서 다소 불안한 미국 생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간과 건축물을 통해서 바라본 미국은 꽤 인간적인 곳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곳곳마다 배치가 되어 있고 도서관은 그냥 책만 빌리는 곳이 아니라 그 안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가 있고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공동체가 살아있고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학습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진 공간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면서 학습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부분은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간과 건축물을 통해서 본 미국에서의 생활기 <모든 날 모든 장소>를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