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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 ㅣ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요즘은 짧아도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한 문구에 끌린다. 이 책 <고상하고 천박하게>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대단히 궁금했다. 이 책은 젊은 두 예술가의 편지 교환과 대화가 담겨있는 에세이이다. 저자 김사월씨는 10년차 싱어송 라이터이고 이훤씨는 언어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소통하는 시인이다. 세상을 매우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대화라 그런지 첫 편지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표현마다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고 서로를 굉장히 아끼는 마음이 느껴진다. 혹시나 너무 난해하진 않을까 했는데, 그냥 평범한 듯 특별한 두 예술가의 이야기였다.
이 책의 첫 글은 저자 이훤의 결혼식에 다녀온 김사월의 편지로 시작된다. " 너 왜 자꾸 우니 " 라는 다소 사랑스러운 타박 (?) 으로 시작되는 편지는, 가부장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경상도 여자들의 모임을 지나, 부모님이 축가를 불러주고 축무를 추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소 파격적인 결혼식에 대한 부러움으로 이어진다. 그 뒤 바로 이어지는 답장에서 이훤은 죽지 못해 살아왔던 지난 날과 이제는 살고 싶게 해주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달라질 줄 나도 몰랐다 " 단순한 편지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다가도 불쑥 나오는 깊이있고 감동적인 표현에 나도 모르게 그만 감격하게 된다.
이 책은 계속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장. 가수이면서 동시에 가사도 쓰고 수필도 쓰는 김사월씨는 무대에 설 때의 두려움과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작품에 달리는 악플을 보며 고통받는 자기 자신을 고백한다. 어쩔 수 없이 대중들에게 노출이 되어야 하고 대중들의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예술가로써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반면에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으로 온 이훤씨에게서는 오랫동안 소외되어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많이 보였다. 책 속에는 두 사람의 편지글과 대화 뿐만 아니라 이훤씨가 찍은 듯한 사진들도 실려있는데, 대도시의 뒷골목 등을 찍은 사진들과 이 둘의 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책에 실린 사진 작업의 제목은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 라는 것인데, 이민자로 살면서 단절감을 많이 경험한 이훤씨의 "이민자 정체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다. 이 사진전을 본 이민자들은 이훤 씨에게 눈물이 날 것 같다고 고백을 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건 분명히 이주자의 정서라고 확신을 하지만, 웬걸,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이 사진전을 본 후 비슷한 심정을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둘은 어쩌면 "단절"을 경험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경험이 아닐까? 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냥 가볍게 나누는 대화인 듯 하면서도 작품 세계에 대해 깨닫고 고민하는 흔적들이 보인다.
이 책에는 특히나 적어놓고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은 문구가 굉장히 많았다. 일일이 다 열거하긴 힘들지만 나같이 메마르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한줌의 시원한 물과 같은 문장과 글이라는 느낌이다. 서로를 아껴주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로써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고민을 털어놓고 깊은 마음을 나누는 이런 대화가 굉장히 따뜻하고 진실되게 다가온다. 답장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시인 이훤, 그는 사월이 있었기에 마음 속 어항과 이끼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한다. 그리고 사월은 성별과 계급을 뛰어넘어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고맙다 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아놓은 편지지와 일기장 그리고 사진첩을 몰래 들여다본 듯한 경험, 비밀스럽지만 황홀한 경험을 선사해준 책 [고샹하고 천박하게]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