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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 밑줄 긋는 시사 작가의 생계형 글쓰기
김현정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어제보다 좋은 문장을 위해
오늘도 고민하는 모두를 위해
그냥 읽고 돌아서는 게 아쉬워서 나는 서평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기억 속에 남기고 싶어서 리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내 글이 함량 미달일까 봐 조금 걱정이다.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좀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분들의 책을 자꾸 읽게 되는데, 이번에 읽은 책 <연중 마감, 오늘도 씁니다>는 그래서 더욱더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는 부분은 결국 글은 남에게 읽히기 위한 것, 미사여구가 많은 것보다는 읽기 쉬운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라는 내용이었다.
저자 김현정 씨는 2003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이라는 프로를 위해 10년간 새벽 5시 반에 출근하여 생방송 원고를 작성하고 글감을 찾고 출연자 섭외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 무려 5시 반!! ) 2014년에 JTBC <뉴스룸>에서 앵커 브리핑을 맡아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사회적으로 울림이 컸던 그 앵커 브리핑을 맡았던 분이 바로 저자였다는 놀라운 사실! 이 책의 부제는 "밑줄 긋는 작가의 생계형 글쓰기"인데, 거의 2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방송 작가의 프로의식과 노련함이 한꺼번에 담긴 부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지도 않은 균형감각과 더불어 방송가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 작가의 여러 경험담 덕분이었다.
나는 우선 작가가 함께 일했던 앵커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한 ( 그냥 나의 뇌피셜 ) 차가운 느낌의 손석희 앵커에게 최종 원고를 보내는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까? 메일을 클릭하며 덜덜덜 떨리는 손을 기억하는 작가의 멘트가 재미있었다. 앵커는 단답형 " 보냈다 / 고쳤다 / 다 고쳤다 "로 된 답장을 주로 보냈다고 하는데, 그 안에 담긴 속뜻이 너무 재미있었다. (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으시길 ) 작가는 JTBC 방송국 다음으로 일하게 된 KBS 방송국에서 만난 이소정 앵커라는 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한다. 축구팀 소속에 밥도 고봉밥으로 먹는 쎈 언니이지만 스태프들에게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다고. 역시 직장 생활의 백미는 좋은 직장동료와의 케미이다.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가 생활 동안 겪은 충격적인 사건들이었다. 나에게도 충격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쓰레기 만두 파동"인데, 작가가 2004년 <손석희의 시선집중> 막내 작가를 하던 시절 썩은 무로 만두소를 만든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영세 만두 공장이나 업체가 한꺼번에 망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작가는 다음 날 6시 15분 생방송 프로를 위해 전날 밤 한 만두 업체 사장과 통화를 했는데, 통화는 영 찝찝했고 사장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도 엉망진창이었던 것. 결국 쓰레기 오명을 뒤집어쓴 사장이 억울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날 밤 극단적 선택을 했고 작가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당시의 스스로를 반성한다. 방송국에 있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두 가지일까? 이런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켜온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는 글 속 에서 작가의 성실함과 꾸준함에 감동을 받았다. 69쪽 " 글쓰기는 장거리 달리기와 같다. (...) 하지만 매일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 좀 못 썼다고, 주눅 들지 않아야 내일도 쓸 수 있다. (...) 그래도 정 안 되겠으면 원고료를 떠올린다. (...) 하루치 원고를 견디면서 오늘도 마라톤 하듯 달리기를, 아니 글쓰기를 이어간다." 옛 말에 머리 좋은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시기를 다 극복하고 20년간 꾸준하게 방송 작가의 길을 걸어온 저자가 바로 "즐기는 사람"이 아닐지. 잭표지에 남긴 작가의 말에 "글은 손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란 표현도 정말 감동 그 자체다.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진심어린 자세가 이 문장에서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재미도 있었지만 감동도 그에 못지 않았던 에세이 <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