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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평점 :
"우리는 디그니타스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겐 커다란 슬픔이자 고통이다. 그러나 죽음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은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 딸의 이야기이다. 온몸에 암세포가 퍼지는 바람에 매일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던 작가의 어머니... 생전 밝고 긍정적이었던 엄마는 결국 참을 수 없는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된다. 이 책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길을, 외롭지 않게 배웅했던 딸의 아련하고도 슬픈 사모곡이다.
작가의 이름이 되게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SF 호러소설 [부디 너의 세상에도]를 지은 분이셨다. 기발하기도 하고 현대인에게 강렬한 메시지 전달도 하는 책이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책이 참 흥미진진하구나라는 생각만 했지, 작가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만약에 그녀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별로 효녀도 아니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모녀관계이지만 엄마라는 특별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결코 냉정하거나 침착할 수 없을 것 같다. 엄마와 함께 디그니타스로 떠나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라는 짐작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작가의 엄마 조순복씨는 회갑 잔치 이후 5년이 지난 어느 날 유방암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 씩씩했던 그녀는 힘든 수술과 항암 치료를 모두 묵묵하게 잘 견뎌낸다. 수술도 잘 되고 치료도 순조로웠기 때문에 암으로부터 해방된 줄 알았던 어느 날, 가족들은 유방암이 뼈로 전이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뼈로 전이된 암세포는 온몸을 갈아내는 듯한 심한 통증을 불러일으키고 밤에 잠도 못 자는 등 고통에 시달리던 작가의 엄마는 여러 번 딸의 감시를 피해 자살 시도를 하게 되고, 엄마의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작가는 결국 스위스에 가서 조력자살을 하겠다는 엄마의 결정에 동의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묵직한 슬픔 때문에 자꾸만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딸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려는 듯 농담까지 하는 엄마의 심정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멘토인 엄마가 곧 이 땅에 없게 될 거라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자꾸 눈앞이 흐려지는 딸... 독서하는 내내 나는 눈물바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여기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만 쉬쉬하고 본격적으로 조력자살 혹은 존엄사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해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 주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불길함을 불러온다고 해서 무조건 억누르고 존엄사나 조력자살에 대한 논의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잠들 듯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죽기 전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견뎌야 하기도 한다. 환자들의 고통은 그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나 가족들도 같이 시달릴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으로 삶을 택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택하는 것보다 더 나쁜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고, 가치 있는 삶, 살만한 삶, 스스로 선택하는 삶 등을 위해서 반드시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런 논의를 함에 있어서 이 책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가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엄마를 지켜보고 돌보고 죽음을 선택한 길에 함께 했던 딸이 쓴 생생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했던 삶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선택 - 죽을 수 있을 권리 -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과 성찰이라는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 좋은 책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