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벽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황성연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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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공작새 꼬리에 달린 예쁜 깃털 같은 거야.

힘 있는 자에게는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새에게는 슬픔만을 가져다주지."

SF 단편집 [종이 동물원]으로 켄 리우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거기에 실렸던 소설 중에서 분명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도로 발달한 기계 문명을 다룬 듯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있었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만나서 대단히 독특한 분위기를 띠는 소설이었다. 그러한 장르가 "실크 펑크", 즉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를 다룬 역사 대체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비행선과 열기구 등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오래된 미래"를 다루는 듯한 이 "폭풍의 벽"도 실크 펑크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폭풍의 벽]은 민들레 왕조 연대기 중에서 "제왕의 위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발표된 소설이다. 전작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앞부분은 조금 헤맸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신화와 역사가 절묘하게 뒤섞인 대하드라마 혹은 서사시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주인공 조미가 지식인인 루안을 만나서 그를 스승으로 모신 채 열기구를 타고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모험하는 이야기는 마치 영웅신화를 그대로 모셔온 느낌이랄까?

기나긴 혁명 끝에 다라 제국을 이끌게 된 제왕 쿠니 가루. 비교적 열린 사고를 가진 그는 다라 전역에 있는 재능 있는 여성을 모으기 위해서 "황금 잉어 계획", 즉 장래가 촉망되는 여자아이를 찾아내서 그들 부모에게 몰래 돈을 주고 자녀가 학교를 다니고 시험을 치르게끔 격려하도록 만드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보수적 시각 때문에 그 프로젝트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하지만 사실 쿠니가 그 계획을 만든 이유는 후계자 선택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두 아들에 비해서 훨씬 똑똑하고 배짱이 넘치는 딸 세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던 것!

사실 [폭풍의 벽]은 켄 리우 작가가 역사를 재해석하기 위해서 쓴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는 주로 남성 / 지배자 / 승자 위주의 관점으로 쓰인 것이 사실이다. 사회 속에서 약자에 불과했던 여성은 누군가의 아내, 딸 그리고 정부로 등장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들의 적극적인 활약이 묘사된다.

우선 대표적인 인물인 주인공 조미. 그녀는 어촌 지역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가족들을 잃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릴 적에 바닷가에서 이상한 환상을 보고 나서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기고 다리 한쪽을 절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운명처럼 황제의 고문이었던 철학자 루안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도 몰랐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깨닫고 여러 방면의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나라에서 시행한 시험에 합격하여 점차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떠오른다.

그녀 외에도 아주 명민하고 지혜로운 쿠니의 딸 세라, 두 아들의 왕궁에서의 입지를 두고 막후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리사나 부인과 지아 황후 그리고 강력한 전투력에 게지라 지역을 이끌고 있는 긴 여왕까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더 뛰어난 지략과 의지를 선보인다고 해야 할까? 나는 비록 세계관을 빌드업 해나가는 [폭풍의 벽] - 상까지 밖에 못 읽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쿠니 가루의 뒤를 이을 2세들의 성장과 정치판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다지는 조미의 활약이 기대되었다. "실크 펑크"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켄 리우의 신비롭지만 매우 감동적인 역사 판타지 세계를 함께 탐험하고 싶은 독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소설 [폭풍의 벽]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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