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벽선사의 전심법요·완릉록 해설
황벽 지음, 나영석 해설 / 하움출판사 / 2024년 10월
평점 :
나는 뚜렷하게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루하루 생활을 잘 하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잘 지켜나가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힘들 때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랬고, 성당에 나가서 울면서 천지를 다스리는 그분께 기도를 올렸었다. 유독 힘들 때만 종교를 찾았었다니 나도 참 간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불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일종의 철학이자 수행이라는 생각을 좀 했었는데, 이 책 [황벽선사의 전심법요 완릉록 해설]에서 그런 부분을 말해주는 것 같다. 부처님의 상을 모셔놓고 숭배하는게 불교가 아니라 내가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게 요점인 듯.
이 글을 쓰신 저자 나영석님은 대학 시절부터 줄곧 깨달음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가정을 이끌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재가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해오신 것으로 보인다. 퇴직 이후 본격적으로 독서와 명상을 통한 자기 수양을 통해 제2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왜 유독 황벽선사의 책들을 해설하겠다는 마음을 품은 걸까? 서문에 그런 내용이 실려있다. [의식혁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영성가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쓴 책에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영성가들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의식 수준이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한 인물들 중에 황벽선사의 책이 있었다는 것. 그 전의 번역본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어서 이번에 본격적으로 해설을 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전심법요와 완릉록에 나오는 내용이 우선적으로 실려있고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덧붙여져 있는 형식이다. 솔직히 말해서 불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정도인 나로서는 다소 난해한 내용이긴 하지만 우선 [전심법요]에 실린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여기서는 "한마음"과 "상" 그리고 "경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한마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마음, 즉 개인의 "나"라는 마음인 "에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한마음"이란 "개인적인 마음과 일반적인 마음의 근원인 동시에 그것들을 자신안에 내포한 것으로서 전지,
전능, 보편하여 절대적 진리에 부합하는 무한차원의 절대인 절대의식, 혹은 순수의식"이라고 한다.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라는 성철 스님이 남기신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161쪽 완릉록 해설 부분에서 "마음이 곧 부처이고, 무심이 곧 도이다"라는 문장을 읽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부처님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마음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생각을 움직이고 감각을 사용하여 분별심을 내는 것, 즉 상대와 나 주관과 객관 등을 구분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마음 자세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중생인 내가 이 책에 담긴 넓고 깊은 지혜를 제대로 알기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 휩쓸리며 살다보면 이것 저것 부딪치고 성난 마음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렇게 일어나는 분노나 어리석음을 조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예전에 신실한 불교 신자였던 친언니의 소개로 단기 수행자로 절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삶을 나누기도 하고 본인이 느끼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감정의 찌꺼기를 덜어내는 시간을 가졌었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어렸던 탓에 나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함께 수행을 했던 아저씨와 아줌마들은 어두웠던 마음을 다 털어내고 밝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들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라는 것과 "에고가 사라진 참 마음"을 조금이라고 느끼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든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 나의 그림자일 뿐이다, 무심이란 에고의 마음이 없는 것, 성불이란 육체를 가진 나를 없애고 절대의식으로 머무는 것-은 실제로 깨달음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명상 등을 통해 수행에 전념하는 분들에게 주어지는 보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는 다소 어렵지만 지혜로 가는 길목에 조금 들어서는 느낌을 안겨준 책 [황벽선사의 전심법요 / 완릉록 해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