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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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겪은 소녀의 집념이 만든 가족을 지키는 인형,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는 붓,

그리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

일종의 소설집인 [청과 부동명왕]에는 주인공 도미지로를 중심으로 한 4편의 연작소설이 실려있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 이번에도 역시 풍부한 시대상이 고스란히 연출된다. 우리나라도 그랬듯, 예전에는 아무리 어진 왕이 있더라도 못된 중간 관리들이 민초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경우는 특히 중간 관리자 축에 드는 무사들이 칼을 휘두를 수 있었기에 더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뿐 아니라 일본의 경우도 과거에는 여성들의 지위가 터무니없이 낮았던 것. 이 두 가지 주제를 아주 인상 깊게 다룬 단편 <청과 부동명왕>과 <단단 인형>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청과 부동명왕>

주인공 도미지로는 교넨보라는 승려의 소개로 괴담을 들려줄 이야기꾼을 소개받는다. 동천암이라는 절에서 온 여성 이네는, 우린보 (멧돼지 새끼)라 부르는 조각상을 메고 왔는데, 우린보는 사실 부동명왕이라는 신과 관계가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오나쓰라는 열다섯 살의 처녀. 그녀는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채소집 대행수의 손을 타서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아이가 유산되고, 곧이어 자신을 돌봐준 이모가 죽은 후, 오나쓰는 가족과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특히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자신들을 살뜰히 보살펴준 이모를 경멸하는 가족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오나쓰는 버려진 절인 동천암에 자리 잡게 되는데....

<단단 인형>

상인 몬자부로씨가 도미지로를 찾아와 조상 중 한 명인 몬이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사와야에서 일꾼으로 일하게 된 몬이치는 대행수 유지와 함께 된장을 만드는 마을인 미쿠라무라 마을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악독한 새 다이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마을의 새로운 도매상과 된장을 거래하라고 미쿠라무라 마을 사람들에게 지시한다. 하지만 이시와야와 오래 거래해온 마을 사람들은 그 명령에 저항했지만 다이칸은 저항한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동굴 안에 있는 물 감옥에 가둬버렸다. 이장 아내인 오쓰기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대행수 유지는 마침 마을을 찾아온 관리들에게 엎드려 간청하지만, 잔인하고 악독한 관리들은 유지와 오쓰기를 칼로 베어버리는데....

단편 <청과 부동명왕> 속 주인공 오나쓰는 폐가나 다름없는 동천암에서 농사를 지어보려 애를 쓰지만 땅의 질이 형편없어서 번번이 실패를 하게 된다. 그러나 행상꾼 노인 로쿠스케의 조언으로 청과 나무를 심어 흙 속 쇠 기운을 빨아들이고 나자 점점 토양이 좋아지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은 갈 곳 없는 여자들이 절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아이들과 여자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청과를 닮은 머리를 가진 멧돼지 형상의 우린보 조각상. 거대한 지네 요괴가 가진 힘을 물리치고 오나쓰와 여자들을 보살피는 존재로 여겨졌다. 단편 <단단 인형>에서는 눈앞에서 대행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본 몬이치와 동네 꼬마 도비자루는 다이칸의 악독한 행실을 고발하기 위해서 목숨 걸고 모험을 하게 되고, 나중에 우연히 만난 여성 오빈에게서 그녀의 영혼을 담은 인형인 단단 인형을 받게 되는데.....

그 어떤 작품을 통해서도 인간과 사회 그리고 삶이라는 것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 그녀가 이번에는 [청과 부동명왕]이라는 에도 괴담을 소재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과거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여자의 지위는 정말로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불행이 계기가 되어 불쌍한 여인들을 거둬들이게 된 오나쓰. 이 단편을 통해서 작가는 요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했을 수도 있으나 사람의 악독함이 뭉쳐서 요괴가 되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단단 인형이라는 것을 통해 여러 번 목숨을 구하게 되는 몬이치 가족들을 보면서 실제로 조상들이 저런 식으로 자손들을 돌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미여사의 에도물이 빛나는 이유는 아마도 힘없는 백성들, 즉 당시 민초들의 삶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 덕분이 아닐지... 마치 역사 판타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흥미진진한 연작 소설집 [청과 부동명왕]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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