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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고정욱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9월
평점 :
"돈도 꿈도 의욕도 없던 중3 박창식,
1928년 오산학교에서 소년 김소월, 백석, 이중섭과
함께한 두 달간의 좌충우돌 성장기
[까칠한 재석이]라는 유명한 청소년 소설의 저자인 고정욱 작가의 타임 슬립 성장 소설인 [점퍼]를 읽었다. 타임 슬립물은 많지만 주인공이 과거 우리나라의 문화를 담당했던 예술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발상이 정말 참신했다. 특히 이제는 작품으로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김소월 시인, 백석 시인 그리고 이중섭 화가가 이 소설에서 생생하게 구현된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K-drama, K-pop, K-웹툰 등등 전례 없는 한류로 인해서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데, 일제의 탄압 하에서도 예술의 꽃을 피워준 조상님들이 계셨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산중학교 출신의 박창식이다.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나름 인기가 있지만 창식이는 다소 무기력하고 삶에 의욕이 별로 없다. 아마도 창식이가 이런 것은 가정 환경이 큰 이유일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의 비리를 신고하려다가 내부고발자로 몰려서 왕따를 당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로 인하여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을 하게 되고 현재 아버지는 방황 중, 창식이는 할머니와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어두운 현실 때문에 창식이는 정의를 실천한답시고 나서다가 가족을 힘들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게 지긋지긋해진 창식이는 "박창식, 꺼져버려! 이 지구에서 사라지라고!"를 외치다가 정신을 잃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창식이가 눈을 뜬 장소는 바로 시인 김소월의 숙모님이 운영하는 하숙집이었다. 그렇다! 창식은 시간 여행을 통해서 조선이 일제의 지배를 받던 1928년, 평안북도 정주라는 지역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아마도 이 시대에도 박창식이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인지, 창식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김소월이 사는 시대로 스며들게 된다. 알고 보니 김소월 시인과 백석 시인 그리고 이중섭 화가는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의 동창생이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창식은 이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함께 오산학교 시화전을 준비하게 된다. 나라가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예술 활동이 뭐가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했던 창식은 이 시기에 중앙 여고보 출신의 말순을 만나게 되면서 예술이 가진 힘에 대한 그녀의 의견에 설득을 당하게 된다.
"게다가 예술 자체가 표현 수단이잖아. 강력하지. 식민지 국가의 경우에는 그런 예술 활동을 통해서 더 의미를 강조할 수 있어. 국민의 의식이 예술로 표현되면 독립을 향해 어쨌든 도움이 되는 거잖아."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겠지만 시기와 시간, 장소에 따라 해결법이 다를 거야. 그 방법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야. 그러니까 예술과 문화도 그 가운데 하나지. 어떤 방법이 최고라면서 하나에만 모든 힘을 모으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말순이는 아버지가 일본 순사에게 폭행을 당하며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알고 보니 말순의 아버지 이창봉은 항일 무장투쟁 세력인 의열단을 지원하는 사람이었고, 그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말순과 창식은 일본 순사에게 체포되어서 모진 고문을 받게 되는데........ 과연 창식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소설 [점퍼]는 갑작스럽게 일제 식민지 시절 오산학교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박창식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채 살아갈 의지도 없고 무기력하기만 하던 창식이가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비록 폭력을 쓰면서 강력하게 대항하지는 않았지만 문학, 예술 활동으로 단단하게 독립으로의 의지를 다진 일제 식민지 시절의 조선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모함으로 일본 순사에게 고문을 받으면서 창식은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고 역사의식을 새롭게 갖추게 된다. 한층 더 성숙해진 창식은 자신의 재능이 앞으로 어떻게 쓰여야 할지 알게 되는데...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 준 좋은 청소년 소설 [점퍼]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