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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평점 :
비극으로 얼룩진 고국의 역사와
시대가 남긴 상흔을 안고 치유하는 한 가족의 서사시
소설 [해방자들]은 흐르는 강과 같고, 음유시인이 부르는 서정적인 시와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그만큼 표현과 문장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특히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다루기에 진한 슬픔과 감동이 밀려든다. 우리 민족은 강대국에 의한 질곡과 비탄의 세월을 걸어와야 했다. 일본의 잔인한 지배 아래 신음했고, 패권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적 힘겨루기 때문에 한반도는 여전히 남과 북으로 단절되어 있다. 민족의 비극은 개인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인숙과 성호 부부의 가족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양한 화자들은 1980년대부터 2014년까지의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그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도 물론 등장한다. 1980년대는 광주를 피로 물들인 그 사건, "광주 사태"가 벌어진 시기이다. 한 독재자가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시위를 북에서 내려온 폭도들의 테러로 규정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만행을 저질렀다. 길을 걷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언니, 동생이 총칼에 맞아 죽었던 시기이고, 이때 인숙은 아버지 요한을 잃는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한국에서 살 수 없던 인숙과 성호는 시어머니 후란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책 [해방자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겪어온 수많은 사건들과 비극적 역사를 다루면서 동시에 인숙과 성호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갑자기 떠나버린 아버지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호와 마찬가지의 상실감으로 아들 성호에게 집착하는 후란. 시어머니가 아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인숙은 이 복잡 미묘한 모자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면서 산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로버트라는 한국인을 몰래 만나기도 했다.
사실 이 로버트라는 캐릭터가 특별한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모두들 눈 감고 있을 때 혼자서 눈을 떴던 자라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일본에 징용을 갔다가 살아돌아온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일본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던 한국인을 몰살시킨 사건에서도 살아남았고 제주 4.3 사건뿐만 아니라 6.25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다. 아무래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커서 그런지, 로버트는 젊은 시절부터 신문과 연설 등을 통해서 하나의 민족, 통일의 중요성을 설파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자는 아무도 없다.
"갈라진 나라도 여전히 나라라고 할 수 있는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241쪽-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설 [해방자들]은 민족이 겪어야 했던 거대한 상실 - 한때 나라를 잃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여전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음 - , 디아스포라, 독재, 정치적 부패, 그리고 개인적 혼란과 희망 등등을 다루고 있다. 이 조그만 나라가 그동안 얼마나 강대국에게 쥐어터지면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영문도 모르는 죽음과 실종 등을 겪어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민족의 비극은 그렇게 세월을 타고 흐르며 개인의 상처로 남아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을 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 [해방자들]이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느꼈다. 시어머니 후란이 죽기 전에 인숙이 그녀를 싫어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화해의 장면이 아닌가 싶었고 로버트가 피를 토하며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장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헨리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듯한 장면에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우리의 희망을 보여주는 듯해서... 계속 울었다.
이 소설은 사실 노래나 시 같아서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함축된 부분이나 명백하게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은 짐작이나 추측으로 파악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표현과 묘사 하나하나가 진짜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이야기가 조금 끊어지는 단점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큰 역사적 비극 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라던가 세월호 사건도 나오는데, 진짜 당시에 느꼈던 원통함과 비참함이 또다시 올라와서 힘들었다. 우리의 치부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는 자꾸 그 사건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시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한국인의 영혼을 노래한 듯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소설 [해방자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