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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의 모든 것
김희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평점 :
"변종 니퍼 바이러스의 슈퍼 전파자이자 인류 최후의 숙주였던 247,
격리된 우주선에서 눈을 감다."
코로나19가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시점이 떠오른다. 평범했던 일상은 사라지고 오직 병에 대한 두려움만이 유령처럼 남아서 공기를 떠돌던 시절.
거리와 버스는 텅텅 비었고 확진자들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 격리 생활로 들어갔다. 직장은커녕, 밖으로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고, 마스크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많은 음모론이 떠돌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19는 실체가 없고 이 모든 것은 주가를 올리기 위한 제약회사의 음모라는 설과 이 모든 것의 설계자라는 외국 대기업의 CEO의 이름이 소문으로 떠돌았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소설 [247의 모든 것]은 그런 코로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노파라는 장소에 사는 박쥐에서 시작되어 돼지를 통해 인간에게까지 퍼졌다고 하는 변종 니파 바이러스. 세계 질병통제센터, 즉 WCDC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열제인 파라세타몰을 불법으로 규정하게 된다. 발열을 숨긴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죄라고 주장하는 그들. WCDC의 조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유를 외치지만, 리더를 시작으로 시위대들은 피를 흘리며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WCDC의 수장은 그들의 죽음을 변종 니파 바이러스의 탓으로 돌리지만, 리더의 몸을 부검한 병리학자는 전혀 뜻밖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이 책은 247이라는 숫자로 불리게 된 한 남자가 평범한 사람에서 온 인류의 적이 되어버린 과정을 다루고 있다. 사실 247은 그냥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의 이름은 김홍섭. 50대의 평범한 한국인이자 축산연구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는 동물을 너무나 사랑했던 죄밖에 없었다. 더러운 우리에서 뒹군 돼지들을 끌어안고 속삭이기도 하고 정글에서 본 거대한 박쥐를 만지려다 물리기도 했다. 바이러스가 박쥐를 통해서 인간에게 전염이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부풀려진 소문 때문에 그는 평범한 인간 김홍섭에서 인류를 말살하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운 247이 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갖가지 크고 작은 바이러스의 창궐은 세계의 시공간적 구조 전체를 뒤바꾸어놓은 게 아닐까. 어쩌면 도처에 음침하게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공포가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입자와 시간, 공간마저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죽음의 공포가 우리 자신을 조금씩 빨아들이며 갉아먹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146쪽-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이런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는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들의 생각처럼 박쥐와 돼지를 거쳐서 슈퍼 전파자인 김홍섭이 퍼트린 게 맞는 걸까?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질병에 걸린 동물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땅에 파묻어버리고 오염수를 바다에 그냥 부어버리는 몰지각한 인류가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아픈 돼지들을 땅속에 파묻으면 질병이 사라진다고 믿은 인류는 인간 김홍섭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더 이상 질병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믿고 그를 인공위성에 태워 우주로 보내게 된다. 247은 쓸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당장의 위협을 없애버린 인류에게 그날은 축제의 날이자 가장 행복한 날이었을 것이다.
뚜렷하게 드러난 사실은 없고 부풀려진 소문과 음모론만 가득했던 코로나 시대. 소설 [247의 모든 것]은 그 시대와 사람들을 절묘하게 닮아있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박쥐탕을 끓여먹던 중국인들의 사진들과 이 사태를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 같은 한 미국 소설가의 책에 대한 루머. 백신을 맞은 젊은이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고 아시아인들에 대한 서양인들의 공격이 잇달았던 혼란스러운 그때. 군중들은 희생양을 찾아내 돌진했고 그 뒤에서 웃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과 같은 모습을 닮아있는 247에 대한 공격과 추방... 이 소설은 그런 어리석음과 교묘함에 대한 풍자를 아주 잘해낸다. 코로나 시대를 굳건히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 [247의 모든 것]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