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뱁, 잉글리시, 트랩 네오픽션 ON시리즈 25
김준녕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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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영어 때문에 고민하다가 겨우 살길을 찾는 한국 청년의 성장기와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나 했는데 서양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4차원 이세계 같은 영어 마을에 주인공들이 도착하면서부터 독자들의 동공 지진을 부르는 대 환장 파티가 펼쳐진다.

전성기 시절 주성치 감독이 만든 B급 코미디 영화에서 나올 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독서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빵빵 터지게 만드는 소설. 집에서는 영어만 써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오직 “fu-ck”이나 “Fu-ck you” 만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대신하는 아버지 설정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부모님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영어 문장을 만들 수 없는 주인공과 서양인의 외모로 태어나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부모와 사회로부터 배척을 받은 부타. 그리고 LA에 버려진 후 갱스터로 자랐으나 영어를 모르는 노숙자의 품에서 자랐기에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준. 이렇게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덕분에 이야기가 한층 더 재미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영어 마을로 들어온 이후 온갖 서러움과 고난을 당하는 등장인물들. 영어로 문장을 만들지 못하면 아예 밥을 굶어야 하고 고작 치킨과 피자를 먹겠다고 어린이와의 살벌한 영어 퀴즈 대회에 참여한다. 영어 마을에 온 건지, 아니면 일반인들을 위한 해병대 캠프에 온 건지.... 영어를 못하면 생존이 조금 힘들고 굴욕까지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어 마을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없었다.

도저히 전개 방향을 알 수 없는, 마치 럭비공 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내내 이어지고, 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설 내내 너무 웃어서 눈물을 닦는 일을 반복했다. 도대체 작가님이 은은하게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실 수가 있나요?

진짜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드는 엉뚱하고 광기가 넘치는 소설이지만 주인공과 부타 그리고 준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인간에겐 소속감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남의 언어인 영어를 완벽히 숙지하도록 강요받으면서부터 우리는 심리적으로 나라를 잃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우리는 우리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취하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을 이 소설로부터 느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론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말이다.

이제껏 나는 타인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몸부림을 쳐왔다. 정작 타인에게 내 언어에 대해서 배워보라고 한 적이 없었다.

-326쪽-

택시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모든 것을 깨달아버린 주인공. 이제 이해도 안 되고 말할 수도 없는 남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그만두고 나의 언어를 말하기로 결심한다. 넥타이를 잡아뜯는 주인공의 모습이 족쇄를 끊어내는 노예의 모습 같아 보여서 완전 속이 시원했다.

너무 웃기고, 재미있고, 엉뚱했지만 동시에 "나의 언어 말하기"를 생각하게 해준 좋은 소설 [붐뱁, 잉글리시,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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