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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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자식 다음으로 예뻐하던 옥상 장미는 흐드러지게 잘 있습니다.

어느 밤, 잠을 설치다가 바람이라도 쐬러 옥상에 올라갔는데,

하얀 장미가 달처럼 빛나는 걸 보았어요. 예쁘더라고요.

원숙 씨가 이 탐스러운 풍경을 보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싶고"

글월은 편지를 순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편지 가게 글월은 편지와 관련된 용품을 파는 작은 가게인데 여기서는 익명의 상대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펜팔 제도인 셈이다. 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장의 이름은 선호. 연기를 전공하고 배우가 꿈이었으나 오디션에서 낙방을 거듭한 끝에, 자신은 배우라는 직업과는 인연이 없음을 알고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현재는 후배 효영이가 이곳 알바생으로 일하면서 바쁜 선호를 도와주고 있다.

처음에 소설 [편지 가게 글월]을 펼쳤을 땐 그저 자본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현대인이 품을 법한 질문만을 가지고 독서를 시작했다. 모든 의사소통이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 손으로 쓰는 편지와 관련된 가게라니, 이게 과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장사란 말인가? 손 편지는 뭔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혹시나 이 소설이 그렇진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이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애초에 얄팍한 자본주의적 사고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세상이 소설 [편지 가게 글월]에서 펼쳐졌다.

과장 없이, 글월은 세상의 모든 작가들과 시인들의 영혼을 끌어모은 곳인가? 아니면 그곳으로 가면 모두가 한순간에 작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장소였다. 책 속에 소개된 편지글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는데, 다들 문학성이 뛰어나고 깊이가 있어서 편지글만 모아서 작품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편지글 중에서 단연코 내 눈물샘을 터트려버린 편지는 곧 은퇴를 앞둔 교장 선생님인 원철 씨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내 원숙 씨에게 남긴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다가 뜨거운 눈물샘이 그만 팍 하고 터져버렸다.

"원숙 씨가 방사선 치료를 받던 날.

갑자기 내가 사과를 사 오겠다며 뛰쳐나간 걸 기억하나요?

깡마른 당신이 포댓자루 같은 병원복을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터질 것 같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효영이가 이 편지 가게 글월로 취직을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언니가 어디선가 보내오는 편지를 피하기 위함이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야무졌던 언니 효민은 명문 대학의 대학원까지 그만두고 학원을 차리려 하다가 동업자에게 크게 사기를 당하고 어딘가로 잠적한 상태였다. 부모님의 대출금까지 끌어다 쓴 언니가 원망스럽고 화가 났던 효영은, 언니가 꾸준히 보내오는 편지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왔고

현재 선호의 가게에 취직한 상태. 편지를 피하기 위해 온 곳이 바로 편지 가게? 뭔가 의미심장한 듯?

"엄마, 아빠는 잘 지내시니? 두 분한테는 여태껏 편지 한 장 안 썼다.

이 편지를 혹시 부모님이 먼저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야.

엄마나 아빠는 단번에 답장을 보낼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 못 보내겠는 거 있지.

봉투에 대문짝만하게 네 이름을 적은 게 이런 이유였어. 너만 보라고."

요즘 살림살이도 팍팍하고 마음도 너무 건조해진 상태로 살고 있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마음도 두 눈도 촉촉해지는 이야기를 읽었다. 편지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말로는 하기 힘든 뭔가 쑥스럽고 내밀한 자기 고백을 담을 수 있는 힘. 주인공 효영이가 지금은 언니와 잠시 멀어졌긴 해도 그녀가 편지 가게에서 일하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편지 가게 글월]은 한마디로 감동이다. 한순간 책에서 향기가 은은하게 풍긴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책 속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써낸 글들이 풍기는 향기가 아닐까 싶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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