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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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했으나 신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사고 패턴을 보면서 '혹시 외계인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남보다도 더 멀리 서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우리 인간 각각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가 겪어온 경험과 문화라는 재료로 만든 우주 안에서 " 자신 "이라는 거대한 행성 주위를 맴돌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죽었다 깨어나도 다른 우주에 속하는 행성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행성?

SF 장르 작가로 유명한 배명훈 저자의 책 [청혼]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 형식이나 내용은 SF이지만 결국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도 그들 사이 뛰어넘을 수 없는 시공간, 그 이해할 수 없음과 거리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인지 책의 마지막 문장 "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 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너와 나의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너를 영원히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 선언처럼 들려서 대단히 로맨틱하게 다가왔다.

주인공은 목성 근처에 주둔하면서 외계에서 날아온 적들의 공세에 맞서는 궤도 연합군 소속의 장교이다. 언젠가는 지구 행성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기에 이들은 목숨 걸고 적들과 싸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지구에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이루어진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17분 44초, 직접 가게 되면 170시간이 걸리는 거리. 결코 짧지 않은 거리이기에 자주 갈 수 없는 주인공의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그래도 휴가를 받는 즉시 그녀에게도 날아가는 주인공. 오고 가는 시간보다 머무르는 시간이 굉장히 짧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주인공이 겪게 되는 문제는 대략 2가지 정도이다. 첫 번째는 그가 우주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사고방식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인들은 위, 아래를 구분하고 서열이나 권력에도 민감하다. 중력과 위아래 구분이 없는 우주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이것은 지구인인 연인과 주인공 간의 원활한 연애를 가로막는 요소가 된다. 두 번째는 그런 지구인들이 우주인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인들이 모인 군대가 결국엔 반란을 일으킬 거라고 확신하는 지구인들은 그들을 감시하는 감찰단을 보낸다. 도대체 외계에서 온 적들과 싸우는 건지 아니면 감찰 단과 싸우고 있는 건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다.

한편 적들은 점점 더 진화된 기술을 사용하면서 궤도 연합군을 압박하고 있다. 시차 때문에, 적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 ( 버글러의 모순 ) 이동 패턴을 들키지 않기 위한 다소 격렬한 함대의 움직임 ( 버글러 기동 ) 함대와 비슷한 전파 신호를 내서 아군의 위치를 교란시키는 장비 (디코이) 등등 만약에 우주에서 전투를 하게 된다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런 전술을 쓸 수밖에 없겠구나 .. 하는 게 잘 묘사가 되어서 재미있었다. 한 번씩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면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이라면 이미 저 별은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소설로 구체화된 느낌이었다.

적들의 함대 주위에 나타난 중력 렌즈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존재가 맞다. 그러나 감찰단 소속의 리델 원수는 적들의 함대가 아군의 함대와 비슷하다는 점과 루시퍼 입자 방출이라는 같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궤도 연합군을 이끄는 데 나다 장군이 반란을 시작했고 시간을 뛰어넘어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 여기서 인터스텔라 책장 장면 떠오름 ㅋㅋㅋ ) 즉 미래로 간 데 나다 장군이 현재의 아군을 공격한다는 그 말씀? 그렇다면 그들이 "파멸의 신전"이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천체가 사실은 다른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같은 우주라는 것인가?

위, 아래도 없는 광활한 우주. 주인공이 타고 있는 함대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조각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신출귀몰하는 정체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적들과 맞서야 한다. 이런 상황인데 빛의 속도로 17분이나 떨어져 있고 설상가상으로 갈등 중인 연인에 대한 마음이 여전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적을 궤멸하기 위한 작전에 나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멸의 신전"으로 전투를 위해 날아가는 주인공. 그는 연인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편지를 썼다. 시차 때문에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주인공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별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이 함축되어서인지 편지는 정말 로맨틱했다. 처음엔 알쏭달쏭했으나 읽는 동안 어느새 푹 빠지게 되는 소설 [청혼]

" 반드시 돌아올 거야. 이상하지? 나 같은 우주 태생이 어딘가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이제 나도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 - 154쪽 -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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