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알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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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그냥 몽유병 환자처럼

꿈꾸며 걷고 있을 뿐이에요.

뭐 하나 얘기해도 될까요?

난 깨어나고 싶어요.

그게 내 꿈이에요. 깨어나는 거.”

[우주의 알]은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블랜딘을 비롯하여 많은 등장인물들은 부모가 없어서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라났거나 어머니가 있었지만 존재를 거의 인정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진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으나 각자만의 이유로 적극적으로 서로를 외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화 물결에서 뒤처진 채 버려진 황량한 도시와 창문도 없는 집이 있는 저가 아파트 그리고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 [우주의 알]

소설의 배경은 가상의 도시 바카베일이다. 과거에는 존 자동차라는 이름의 큰 회사가 있었다. 많은 차들이 생산되고 팔리면서 바카베일은 산업화 도시로 급부상하는 듯했으나 존의 자식들, 손자들이 거쳐가며 경영면에서 방만해진 회사가 도산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문을 닫은 공장에서 폐수가 흘러나오며 도시는 물론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인공은 블랜딘이라는 이름의 가냘픈 젊은 여성. 원래 이름은 티퍼니였으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 한 선생님과의 애정사 때문 ) 자신의 이름을 1700년대 프랑스에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순교당한 여성 블랜딘으로 바꿨다.

또 다른 주요 인물은 바로 조앤 코월스키. 그녀는 레스트인피스닷컴이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거기서 부고 기사에 달리는 댓글 중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을 삭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와 접점이 있는 주인공은 모지스 로버트 블리츠라는 사람인데, 그는 얼마 전 영화배우였던 자신의 어머니 엘시 블리츠의 부고 기사에 그녀의 민낯을 폭로하는 듯한 악플을 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였던 그녀를 추모하는 다른 여러 긍정적인 댓글들 사이로 엘시가 마약 중독자니 자식을 학대한 사람이니 하는 댓글을 단 모지스. 조앤은 고민 끝에 댓글을 지웠고 그런 그녀를 벌하기 위해서 모지스가 바카베일로 찾아오게 된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영혼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의 상처를 입은 블랜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마치 투명인간 취급했던 엄마에게 큰 상처를 입은 모지스. 소설 내내 우리는 블랜딘의 영혼이 그녀의 몸을 언제쯤 어떤 식으로 빠져나가게 될지 궁금해하게 되고, 모지스가 결국엔 조앤을 만나서 그녀에게 치명적인 벌을, 과연 어떤 벌을 가하게 될지 궁금해할 수 밖에 없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또 다른 재미 요소는 각 등장인물들에게 일어난 기이하고 환상적인 체험이었다. 여배우 엘시 블리츠는 죽기 전에 사신을 만나서 그에게 사인을 해준다. 그녀의 아들 모지스는 자신의 모공에서 갖가지 색깔의 섬유가 자라난다고 믿는다. 영혼이 빠져가는 체험을 하게 되는 블랜딘 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이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아직 10대 청소년이면서도 10대 같지 않은 자의식 강하고 성숙한 블랜딘의 내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소년 잭에게 이야기했던 부분이 내 마음속에서 깊이 자리 잡았다.

" 모두가 그렇지만 난 특히 SNS의 가짜 보상에 예민하거든. (...) 내적 삶과 공통적이라고는 거의 없는 사회적 수행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그들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하고, 불안감을 배로 늘리고, 세계관을 좁히지. (...) 모두가 인플루언서가 되고, 모두가 인플루언서의 영향을 받고 (...) 이 자기 관리라는 건 실은 그냥 발전한 이기주의야. 너를 개인적으로 산회시키는 것들 "

[우주의 알]은 어떻게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 세상이 그대를 슬프게 할지라도 노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현실은 가끔 혹은 자주 무자비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이런 무자비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도모한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황당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처럼. 자본이 공동체에게 가하는 폭력과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혹은 동물에게 저지르는 폭력이 고스란히 소설 속에서 드러나며 존재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책이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칠고 황량한 아스팔트에서도 꽃이 피어나듯.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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