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마리스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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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인간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이 교과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간이 참으로 복잡한 뇌구조를 가진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계를 볼 때 자신만의 창으로 주로 본다는 사실도. 즉, 내가 보는 세상과 남들이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고 우리들 각각은 객관적인 현실 " 그 자체 " 를 보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 [스텔라 마리스]는 주인공 얼리샤가 제 발로 입원하게 되는 정신병원 이름이다. 글의 대부분은 얼리샤와 그녀의 담당 의사와의 1 대 1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녀는 뛰어난 두뇌를 가진, 그야말로 천재인데, 특히 수학에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일반 사람들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얼리샤는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조현병 환자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자신이 창조한 환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속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 그중 그녀가 “키드”라고 이름 붙인 한 존재와 특히 친한 듯 보인다.

거의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이기에, 줄거리라고 말할 게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은 굉장히 흥미롭다. 언뜻 보기엔 완전히 미친 사람 같은 얼리샤이지만 그녀가 하는 말에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된다. 뭐라고 할까? 반쪽짜리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들과 달리 얼리샤는 완전함을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일반인들은 “낮”을 살아간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물질로 대표되는 그런 세계.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낮”만 있는 게 아니라 “밤” 도 있다. 무의식과 꿈 그리고 형이상학과 환각 등으로 가득찬 그런 세계를 얼리샤는 찾아버렸다. 그녀는 저 너머 세상을 흘긋 봐버렸고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제 발로 정신병원에 온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스텔라 마리스]를 읽으면서 불완전한 세상에서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환희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사회적 실체는 수학의 세계라고 말하고 이 세계는 우주보다 앞서 있다고 말한다. 보통 인간들은 태어나는 순간 눈뜬 장님처럼 살아간다. 진리가 뭔지 궁금해하기보다는 우리의 DNA에 새겨진 생물적 지도를 따라가고 관습에 따라가는 그런 삶을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겉 포장지가 속 내용물인 줄 착각하고 죽는 순간까지 포장지에 집착하며 살아간다면, 얼리샤같은 사람은 대담하게 포장지를 뜯어버리고 내용물을 자유롭게 경험하기를 선택한다.

사실 얼리샤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초월적인 세계라고나 할까? 그녀의 장광설 사이사이로 핵을 개발하는 일에 동참하여 인류에게 고통을 준 아버지에 대한 대목이 언뜻 비친다. 문득 이 대목에서 “ 무의식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한 일에 아무런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아버지 대신에 얼리샤가 큰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물론 얼리샤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줄거리라는 확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소설이기에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헷갈렸다. 사실 완독도 힘들었다. 그러나 얼리샤가 펼치는 장광설 안에 인간과 삶을 꿰뚫는 날카로운 진리가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가 노년에 느낀 인간과 삶에 대한 생각을 얼리샤를 통해서 밝힌 게 아닌가 싶었다. 굉장히 허무하고 공허하다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이 소설은 평생을 살아도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인간과 삶에 대한 비밀과 진리를 보여주려고 하는 듯 하다. 아주 까다롭고 완고하지만 거짓없는 세상을 꿈꾸는 철학자를 만난 느낌이다. 코맥 매카시의 다른 책은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 [로드]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세상에 기쁨이 없다는 건 단지 사물을 보는 관점이 아니에요. 모든 자비가 수상쩍죠. 사람들은 결국 세상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는 걸 파악하게 돼요. 세상은 한 번도 마음에 둔 적이 없어요. ” - 43쪽 -

“ 세상이 살아 있는 걸 창조한 것은 그것을 다 말살하기 위함이다 ” - 43쪽 -

“ 진화에는 우리 생존에 영향을 주지 않는 현상의 존재에 관해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기제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걸 알지 못하고 있는 게 뭘까. 우리는 생각하죠.” - 54쪽-

“완전하고 객관적인 세계—칸트의 것이건 다른 어떤 사람의 것이건—의 문제는 그게 정의상 알 수 없는 거라는 점이에요.” -- 81쪽---


“ 사제가 죄의 가장자리만 스쳐가는 것처럼 정신병 의사들은 광기의 가장자리만 스쳐가요.” -- 92쪽 ---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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