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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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었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

빛바랜 편지 한 뭉치.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의 열정과 한숨 그리고 눈물이 담겨 있었고 다른 누군가의 탄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혈연관계 일지도 모를 한 남자를 찾아 파리를 떠나 피난민들과 함께 고생고생하면서 프랑스 남쪽으로 향했던 루이즈. 그녀에게 있어서 엄마가 남긴 편지 한 뭉치는 삶을 지탱하게 만든 힘이 되어 주었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비극과 개인의 삶에 들이닥친 혼란 속에서 소설 [ 우리 슬픔의 거울 ] 속 등장인물들은 거대한 운명의 힘에 떠밀리듯 인생을 여행하다가 결국엔 한곳에서 만나게 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인간의 삶을 압축한 듯한 문장이 잘 어울리는 듯한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나체를 보여주다가 그가 갑자기 권총 자살을 하는 바람에 혼비 백산하여 나체 상태로 거리를 헤매게 되는 초등학교 여교사 루이즈.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직업을 여러 바꿔가며 사람들을 속였던 주인공처럼, 천재적인 두뇌와 임기응변 덕분에 변호사, 의사, 공보관.. 그리고 결국엔 신부님이 되어 사람들을 돕게 되는, 카멜레온 같은 남자 데지레 마고.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의 유럽 공습으로 인해 적성에 전혀 안 맞는 군인으로 다시금 복무하게 된 수학교사 가브리엘. 그의 눈에 전형적인 야바위꾼, 사기꾼으로 보이는 문제아 라울 랑드라드가 들어오게 되면서 가브리엘은 앞으로의 군대 생활이 정말 힘들어질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나 운명이란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군대 생활 내내 가브리엘을 괴롭혔던 문제아 라울이 그의 목숨을 구하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책의 띠지에 [악마 같은 플롯을 가진 책]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책에 대한 묘사로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머리에 거대한 물음표가 가득했는데 끝날 때쯤엔 머릿속엔 다양한 표현을 나타내는 느낌표가 가득했다. 정상인 같지 않은 3명 ( 루이즈, 데지레, 그리고 라울 )의 좌충우돌적인 삶의 궤적이 독자들을 도대체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가? 할 만큼, 처음에는 소설이 하나의 대소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0대 노인은 왜 루이즈에게 옷을 벗어달라고 요청했고, 왜 그 일이 이루어지자마자 자살을 했단 말인가? 데지레는 어차피 3일만 지나면 드러날 정체인데 왜 저렇게 남들을 속여가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라울이라는 저 군인은 왜 저렇게 소시오패스처럼 행동하고 감정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일이 결국엔 필연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딱 맞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결국엔 " 신 "이라는 게 머릿속에 딱 떠올랐다. 신은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축복"처럼 보이는 "사랑"을 인간에게 주지만 사랑이 결국엔 눈물의 씨앗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겉으로는 "비극"처럼 보이는 "전쟁"을 인간에게 안겨 주기도 했지만 우리는 비극을 통해서 성장하고 인간이 되어간다. 이 소설은 정말 "삶"이라는 거대한 아이러니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이렇게 웃고 울고 다시 웃다가 울고 그렇게 살아가는가 보다.

우리의 삶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나?라고 회의감을 느낄 때 읽어보면 좋을 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마치 자신의 생일날, 남의 생일잔치에 가서 재롱부리는 어릿광대 같다는 느낌도 있다. 굉장히 희극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에피소드들 때문에 웃다가도 다음 페이지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다. 인간과 삶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 나오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잎사귀처럼, 홍수에 떠내려가는 길고양이처럼,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정신없이 헤엄치던 등장인물은 결국에는 운명이 준비해놓은 선물을 받게 된다. 흩어져있던 퍼즐들이 딱딱 맞추어지면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에 속하진 않지만 그들 못지않은 큰 존재감으로 소설을 이끌었던 커플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책의 곁가지 소설, 즉 스핀 오프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루이즈 어머니가 남긴 편지 속에서만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 그냥 편지지만 그 속엔 세상의 모든 커플들만이 아는 세계가 들어 있었다. 관습을 어긴 채 몰래 해야 하는, 그러나 너무나 열정적인 사랑.. 그 사랑의 힘은 루이즈가 여행을 계속하게 도와주기도 하지만 독자가 소설을 계속 읽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발자크라는 작가를 잘 모르지만 책의 소개 글에 나와 있는 " 21세기의 발자크,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이라는 말 때문에 발자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감동 그 자체였던 소설 [ 우리 슬픔의 거울 ]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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