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 내 안의 고독과 불안에 위로를 건네는 푸른 그림에 관한 이야기 ”


굳이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다양한 그림 감상과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어진 명화 투어가 시작된다. 그림 보는 눈이 거의 없다시피한 나 같은 사람도 그림 속 풍부한 의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이드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 아닐까? 그림이 계속 말을 거는데도 대답해 줄 수 없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조금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명화 투어”의 가이드는 에디터이자 아트 라이터인 이현아 작가이다. 

그녀는 이번 투어의 주제를 각 작품이 품고 있는 색깔 “블루”로 잡았다. 우울, 몽상 그리고 관조라는  단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비로운 색깔 “블루”. 이현아 작가는 이 책에서 “블루”의 키워드를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압축한다. 유년 시절, 여름, 우울 그리고 고독. 각 키워드에 어울리는 그림과 관련 일화 그리고 본인의 경험까지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더욱더 재미있었다.


# 유년 시절

작가가 소개한 여러 일화들 중에서 “H”라는 미스터리한 인물과의 경험이 특히 흥미로웠다. 인터뷰와 인터뷰이로 만나 순식간에 친구가 되고 그렇게 인연을 쌓아가게 된 그들.

그러나 마치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듯한, 빼앗긴 유년 시절을 집요하게 돌려받으려고 하는 듯한  “H”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다 그만 작가는 자기혐오에 빠져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멀어지게 되고....


작가는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 작가의 작품 [발렌시아 해변의 아이들]을 소개하면서 앞선 일화를 펼쳐놓는다. 햇빛과 바람 그리고 파도라는 순간에 집중하는 다른 아이들와 달리 그림 속 주인공 소년은 말없이 화가를 응시한다.  유년을 함께 재건할 누군가를 내내 기다려 온 것처럼.


“ 유년의 땅은 늘 불안정하다. 그곳이 대체로 타인에 의해 설계되므로.

자신이 설계할 수 없으므로. (...) 나는 H의 땅에서 무엇을 보고 온 걸까?

그 시절의 빈틈을 메워주기는커녕 파도가 치면 사라질 모래성만 쌓다 온 것은 아닐까?”



# 여름

작가는 "블루"가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여름을 꼽는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와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수박.. 의외로 여름은 "블루" 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작가는 여름이  새로운 단어를 껴안을 수 있는 몸을 갖게 되는 계절이라고 하고, 그래서 주목할 단어로 "나신"을 꼽는다. 타인의 시선이 부재하는 장소에서 훌훌 벗고 다른 사물이 되어보는 경험을 시도하는 작가. 여름 안에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나가 된다. 그녀는 화가 우르타도의 1인칭 시점의 작품 [무제]를 통해 어떠한 관계도, 평판도 걸치지 않은 채 오직 "나"라는 존재로 남은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신으로 고양이를 끌어안으면 나 또한 동물이라는 걸 깨닫고, 

나무로 만든 책장에 기대면 그것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

나는 고양이가 되고, 나무가 되고, 물이 되고, 복숭아가 된다. 

그렇게 여름은 새로워진다 .”


책을 읽고 나니 "블루"의 의미가 좀 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차갑다고 느껴졌던 색깔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현아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상, 인간 그리고 그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책 안에 가득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그림이 내게 말을 걸 때면, 의미를 해석하기 힘들어 소통을 피했지만, 이젠 왠지 끌리는 그림 앞에 가서 숨겨뒀던 내밀한 속 이야기까지 다 고백해버릴 것만 같다.

무심하게 지나쳐온 내 안의 "나"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 준 책 [여름의 피부]였다.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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