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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 ㅣ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9
조영주 지음 / 폴앤니나 / 2022년 7월
평점 :
“ 박비는 이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무나 소중한 것, 다시는 못 볼 것을 그리워하듯
까슬까슬한 손으로 몇 번이고 그 얼굴을 쓰다듬다
이비를 끌어안았다.
” 살아야 한다, 반드시 너만큼은 살아야 한다. “
이비와 박비..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두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특히 k드라마에 많이나오는 출생의 비밀과 엇갈린 운명을 다루고 있다. 막장 드라마라 오해할 수 있겠지만,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상상을 더한 퓨전 역사극이라 그런지 은은하게 전개되는 사랑 이야기가 오히려 품격있다고 느껴졌다. 역사적 격변 속에서 나 자신과 나의 뿌리를 잃어버린 채 떠돌며 살아가야했던 실제 우리 조상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책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전라감사 이극균에게는 천방 지축 뛰어다니는, 마치 사내아이 같은 딸이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이비, 공중 제비가 특기인 그녀는 흰 말을 타고 다니고 허구헌날 복숭아 나무에 올라가 있다. 혹시나 다칠까봐 그녀를 항상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는데 그는 바로 관비 박비이다. 키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 덕에 많은 양반집 마님들이 탐내는 박비... 그러나 그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다.
원래는 명나라에서 서커스 단원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컸던 이비는, 마침 명나라를 방문했던 이극균의 눈에 띄어 수양딸로 오게 되었다. 같은 핏줄이아닌 가족들 틈에서 마음 둘 곳 없던 이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외로운 소녀이다. 그러던 어느날 세력가인 한명회가 보낸 분순어사 정훼가 이극균의 흠을 잡으러 전라도를 찾아오고, 마침 말을 타고 뛰어가던 이비를 발견한 그는 공혜 왕후를 꼭 닮은 그녀를 보고는 자신이 본 것이 진짜 사람인지 혼백인지 헷갈려한다.
공혜왕후는 후에 성종으로 불리는, 소년 왕 이혈의 아내였으나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숨진 상태다. 여기서 질문이 생겼다. 왜 정훼는 이비를 공혜왕후로 착각한 것일까? 역사를 잘 모르는 독자인 내가 알쏭달쏭해 있는 사이에, 정훼는 혼백의 정체를 찾는답시고 온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고, 그런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핀 이극균은 박비를 보내서 웬 땡중같은 스님을 데리고 오는데, 그가 바로 금오신화의 작가 김시습이었다. 김시습은 이비에게 남장을 시켜고 박비를 대동시켜 먼 지역으로 떠나보낸다. 갑작스럽게 정처없는 길을 떠나게 된 박비와 이비... 과연 이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과연 무엇일까?
정치 권력, 그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자손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게 되는 건지...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나는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 사이의 관계를 겨우 파악했다. 그리고 금오 신화를 쓴 주인공 김시습이 빼어난 글솜씨 뿐 아니라 뛰어난 무예를 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처럼 이 책 [비와 비]는 이비와 박비의 운명같은 사랑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 원래 내가 생각했던 것 )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해야했던 많은 사람들의 한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한 번 읽는 것 보다는 2번 3번 읽게 되었을 때 책의 진가를 파악하기가 쉬웠다. 작가님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고 조금씩 이야기의 진상을 풀어낸 덕분에 한 편의 드라마가 추리 소설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몽유도원도를 보게 되면 허투루 볼 것 같지 않다. 많은 눈물과 사연을 담고 있는 한 폭의 그림... 그 그림이 책 안에 실린다면 이야기가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도 든다. 사랑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듯한 아련한 소설.. [비와 비]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