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녹색 갈증]을 읽는 동안 많이 혼란스러웠다. 감각적이고 섬세하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서사적 흐름 때문에.  헤매고 헤매다가 나중에는 그냥 편하게 읽어내려갔는데, 문득 외롭고 불안했던 내 젊은 시절이 떠올랐고,  이 책의 작가 최미래씨도 젊은 날의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주인공을 그려낸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세상에 발을 내딛기 전 밤낮없이 몰려오던 몹시도 지독한 막막함과 불안함... 그리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허기 또는 갈증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프롤로그]는 주인공 "나"가 완벽히 마무리 짓지 못한 소설 속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할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던 "윤조"는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나"에게 할머니가 남긴 보석함을 하나 전달한다. 겉으로 보기엔 예쁘지만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자개 보석함. "윤조"가 주인공의 삶에서 잠시 떠나있던 그때, 즉, 주인공이 글쓰기를 잠시 그만두고 있던 그때 보석함은 그 빛을 잃지만, 그녀가 제일 힘들고 어려울 때 다시 보석함은 그녀의 삶에서 큰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모텔 종업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나"는 "윤조"없는 삶을 견뎌내어야 한다. 그녀에게 살아갈 힘을 줬던 유일한 존재 "윤조" 없이는 모든 게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403호 남자, 203호 할머니 등으로 묘사되는 개성 없고 밋밋한 손님들을 관찰하는 재미로 살아가다가 뭔가 빠진 듯한 부족함과 갈증을 느낀 "나"는 두 번째 이야기 [빈뇨 감각]에서 엄마와 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본인의 문제에 도취된 채 소통 없이 살아가는 그 두 사람에게서 어떤 희망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더욱더 큰 갈증을 느낄 뿐이다.

그러다가 어릴 적 옆집에 살던 무당 언니가 전해준 자개 보석함이 생각난 "나"는 이끌리듯 그걸 열어보게 되고 그녀의 삶에서 사라져 있었던 "윤조"가 갑작스럽게 보석함 속에 기어 나온다. 세 번째 이야기 [뒷장으로부터]에서는 마치 예전부터 있던 사람처럼 "나"의 삶에 완전히 정착하는 "윤조"와 그녀보다 훨씬 더 가족들과 친근하게 살아가는 "윤조"를 바라보며 다소 낯설어 하는 "나" 가 어색한 공존을 이루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문득 깨닫게 된다. 정말로 나를 살게 한 건 바로 "윤조"와 그녀가 기어 나왔던 바로 그 보석함이라는걸.

미래가 불안한 청춘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현실은 가끔 버겁고 무겁다.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할 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생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 하는 갈증이 바로 [녹색 갈증]이 아닐지... 주인공 "나"는 현실에서 도망쳐서 비 현실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 현실로부터 얻은 힘이 오히려 "나"가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삶은 보이는 것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란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지독하리만치 소설 속 인물들과 연결되고 싶어 했던 주인공 "나"는 이제 글쓰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