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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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비극 앞에서 유리처럼 깨진 위태로운

삶의 조각들을 기괴하고 아름답게 모자이크 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걸작!

사상 최악의 폰지 사기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 [글래스 호텔] 그러나 이 책은 사건을 뛰어넘는 삶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인간 본성을 꿰뚫는 듯한 이 소설은, 탐욕에 휘둘려 결국 자신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인간들의 복잡하면서도 자기 기만적인 내면, 그 황량함을 다루고 있다.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이 소설은, 첫 도입부터 다소 쓸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등진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주인공 빈센트와 마약의 늪에서 헤매다가 결국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빈센트의 오빠 폴의 비참한 체험 등이 묘한 분위기에 한몫한다. 이 소설엔 주인공 격인 빈센트와 오빠 폴 그리고 폰지 사기의 설계자 조너선 알카이티스 외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사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각자의 삶이 다소 두서없이 전개된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소설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 분위기가 압도적이라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갔다.

파도에 휩쓸리듯 살아온 배다른 남매 빈센트와 폴은 밴쿠버 섬 최북단의 오성급 호텔 카이에트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카이에트 호텔 동향 유리벽에 에칭 팬으로 '깨진 유리를 삼켜라'라는 다소 섬뜩하고 기괴한 문구를 새겨 넣는다. 호텔 직원들은 야간 청소 관리인인 폴이 수상하다고 지목하게 되고, 졸지에 범인으로 몰린 폴이 모든 책임을 지고 호텔을 떠나게 된다.

폴이 그만둔 이후 빈센트도 갑자기 호텔을 떠나게 되는데, 야간 매니저인 월터는 이후 신문 기사를 통해 빈센트가 호텔의 소유주인 백만장자 조너선 알카이티스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던 빈센트는 하루아침에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라는 자리에 서게 되고 그 역할에 맞는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 시작된 사치와 소비의 향연이 끝나기도 전에 조너선 알카이티스가 쌓아올린 신기루, 즉 폰지 사기 행각으로 일군 그의 이른바 [돈의 제국]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글래스 호텔]은 나에겐 다소 낯선 개념인 폰지 사기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돈과 관련해서 거대한 속임수가 있었고 사람들은 실체 없는 막대한 이익에 이끌려 합리적이지 못한 투자를 해버린다. 돈 앞에 이성이 마비되었다고 할까? 결국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리고 가진 것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은 박탈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거나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모두가 갈망했던 [돈의 제국]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사람들이 거주하는 [어둠의 제국]이 되어버린다.

폰지 사기 사건의 주동자인 조너선 알카이티스를 비롯해서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어딘가 고장이 나 있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기도 하고 아무런 인생의 목표가 없이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인생을 연기하듯 살아간다. 그런데 이게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 작가 에밀리 존 세인트 맨델은 복잡 미묘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본모습을 그야말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과거에 저지른 일로 인해 후회하고 회한에 젖으며 죄책감에 잠 못 이루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처음엔 [글래스 호텔]이 폰지 사기 사건을 주제로 한 스릴러 소설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대신 이 책은 신기루 같은 욕망의 제국이 무너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비록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계속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옥에 갇힌 조너선은 죽은 투자자들의 유령과 마주치거나 카운터 라이프 (평행우주 속 또 다른 삶)을 꿈꾸며 회한에 젖는다. 빈센트는 한 컨테이너 선의 요리사로 취직을 하여 바다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모든 재산을 투자했다가 잃은 리언은 집을 버리고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전국을 떠돈다.

과연 "깨진 유리를 삼켜라"라는 괴이한 문구를 유리창에 새겨 넣은 사람은 폴이 맞을까? 복잡한 퍼즐 같은 이 소설은 과연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까? 폰지 사기 사건이라는 폭탄이 떨어진 후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리언에게 전에 있던 회사에서 일감이 하나 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공해를 지나던 컨테이너선의 갑판에서 한 여성이 실종된 의문의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것. 과연 그녀는 누구이고 결론은 과연 무엇일까?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었던 소설 [글래스 호텔] 전개가 다소 느리고 호흡이 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끝까지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인간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주어진 독서 시간이었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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