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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10여 년간의 취재, 100명이 넘는 취재원, 220권의 취재 노트...
재난이라는 글자 뒤에 가려진 작업자들의
면면을 살려낸 끈기와 집념의 르포르타주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2011년 3월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그 여파로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 쓰나미가 한 마을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것을 보며 엄청난 자연재해에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어난 원전 사고였다. 지진 이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 3, 4 호기가 차례로 폭발했고 수만 톤의 냉각수로도 식힐 수 없는 핵연료가 원자료의 밑바닥을 녹이는, 이른바 '노심 용융'이 발생하고 만다. 사고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km 이내 지역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지역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피난처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원전 사고 수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몰래 버렸다는 등의 짤막한 보도만 있을 뿐 전체적인 사고 수습과 관련된 부분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마도 일본 정부가 원전 사고와 이후 수습에 대해서 철저히 은폐하는 쪽으로 정책을 꾸려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쓴 [도쿄신문] 사회부 기자인 저자 가타야마 나쓰코씨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2019년까지 9년간 원전 현장에 잠입해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까지 인터뷰한 취재원만 1000여명, 취재 노트만 약 220권, 관련 기획 기사만 140회에 달한다고 하니, 진실을 위한 그 노력이 대단하다.
이 책 [최전선의 사람들]에는 방사선에 피폭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고 복구를 위해 피 땀 흘리는 노동자들의 하루를 볼 수 있다. 방호복은 피폭을 100% 막아주지 못하고 푹푹 찌는 더운 여름에 전신 마스크를 쓰고 호흡이 어려운 상태로 일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업자들이 훨씬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가족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최선을 다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반면, 책임자인 정부와 도쿄전력은 진상을 여실히 밝히기보다는 사건 축소에 전전긍긍한다. 심각한 상태를 의미하는 '노심 용융'이라는 단어를 '노심 손상'이라는 단어로 바꿔버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한다. 노다 총리는 "중장기적으로 원전 의존도를 계속 낮춰가겠다고" 주장했지만 대형 건설 회사의 원전 사업 철수를 방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원전 수출을 강행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정부 관리들은 아직까지도 원전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쓴 일지에 따르면, 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즉 작업자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고 본인들은 일회용에 불과하다고 토로한다. 처음에 도쿄전력에서 제공했던 급식과 편의시설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고 7~8차에 이르는 다중 하청 구조 때문에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중간에서 임금을 가로채는 중개업소도 허다하다. 또한 방호복을 입어도 피폭이 되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피폭을 각오하고 수습에 뛰어드는데, 정부가 정한 피폭 기준치를 넘어버리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사망하는 사례가 허다하지만 도쿄전력에서는 그때마다 '피폭과는 무관한' 죽음이라고 말하며 더 이상의 논의를 피하려고 하지만,... 과연 피폭과 상관없는 죽음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혼을 한 가정이 늘어났고 고향을 떠나 피난처를 향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은 일을 두고 부러워하면서도 후쿠시마에서 왔다고 하면 무조건 차별을 하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9년간의 기록 동안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무너지고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달라진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작업자들의 피폭량은 높고 일본은 아직도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탈원전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부 관리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상황은 어떤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서 조사하고 미리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애써 이룬 공동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비극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