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을 도는 여자들 오늘의 젊은 문학 3
차현지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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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죽음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내일 죽어도 괜찮을 이유가 101가지가 생기면,

죽기 보다는 어떻게든 버티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도 101가지가 생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간혹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건, 인생이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 어떤 나라에 살건, 어떤 성별이건, 그리고 몇 살이건간에

살다보면 도대체 인생이 왜 나에게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차현지 작가의 단편집 [트랙을 도는 여자들]에는 삶에 지치고 지친 사람들,

너무 외롭거나 힘들어서 악을 쓰고 버티는 사람들과 미치고 팔딱 뛸 일이 생겨서 앉은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지만, 겨우 정신줄을 붙들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이 사람들 주변에는 버팀목이 되어줄 가족들이나 지인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도움이 되기는 커녕 힘든 삶을 더 가중시킬 만한 사람들만 널려있다.


이 소설은 단편집이고, 각 단편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과 사연들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누군가의 현실들을 매우 담담하게 고백한다.

사별이나 이혼 혹은 중독과 같은,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고 있거나 넘긴 사람들이 모여서

이리 저리 흩어진 삶이라는 퍼즐의 조각들을 조금씩 틀에 맞게 끼워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달까? 너무 슬픈데,,, 슬퍼하는 당사자와 함께 펑펑 울기 보다는 손을 잡고 조용히 있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첫번째 단편 [트랙을 도는 여자들]에는 낡은 빌라 한 채가 나온다.

2층에 살던 주인공 름이는 한밤중 울려퍼진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을 들었으나

부부싸움이라 여기고 외면하고 만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 비명은 303호에서 딸과 함께 살던 40대 아줌마의 것이었고, 그녀는 그날 괴한에게 피습을 당해 목숨을 잃고 만 것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혼자서 무력하게 살아오던 름이는 딸 우지에게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이상하게 삶의 의지를 되찾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다섯번째 단편 [문은 조금 열어둬]에는 음악을 하겠다고 뛰쳐나갔던 아들이 병을 얻은 채 돌아온다. 애지중지했던 아들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지만 실패하고 돌아와 죽어버린 아들.

아내는 방황하고 아버지는 회한에 젖는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의 유일한 노래 [한남동 파란 철문] 을 듣고 나서 찾아 왔다는 '희귀 음악 감상회' 회원들은 "힘들겠지만 계속 해달라"는 말을 아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사라진다. 아들의 흔적을 아예 지워버리려던 아버지는, 그 일이 있은 후, 얼마간 파란 철문을 잠시 열어 둬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행복할 이유가 100가지라면 불행할 이유도 101가지일 수 있다.

마냥 웃을 수 밖에 없는게 인생이라면 불행을 긍정적으로 안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죽음과 자살 그리고 우울증과 같은 불길한 단어들을 쓰는게 기분 나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것들을 외면하는 와중에 삶 전체를 끌어안는 것을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태어나고 아프고 때론 불행하고 울다가 웃다가 사랑하다가 이별하는 것이 인생이고, 파도를 맞이하는 해변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복하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 출판사의 협찬으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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