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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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게 진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 "

이 책 [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 을 읽다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을 하고 살고 있구나..라는 걸 느낀다. 젊은 시절엔, 이 책의 주인공 메이처럼 부조리한 현실, 정의롭지 않은 사람들,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사회에 분노하곤 했으니까. 그런데 내 마음속에도 순수함의 불씨가 조금 남아있긴 했나 보다. 메이의 분노에, 그녀가 조용히 내지르는 외침에 함께 동조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으니. 메이만큼은 아니었더라도 예전엔 나도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 가슴 아파하던 시절이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 은 두 갈래의 서사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메이가 한국에서 살던 시절에 겪었던 상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인도에 와서 그녀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이다. 메이는 한국에서 맞닥뜨렸던 위선과 가식에 치를 떨고 ( 고모의 죽음 이후에도 슬퍼하지 않았던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 인도에 와서는 계급에 따라 나누어진 생활상, 불가촉천민들은 장애를 입은 채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부유한 사람은 편하게 사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한다. 메이가 느끼는 것을 함께 공감하며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먹이 꼭 쥐어졌고 이상하게 슬픔이 퐁퐁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 있던 시절 메이의 이름은 정윤희였다. 윤희로 살던 시절 그녀는 많은 결핍을 겪어야 했다. 어렵게 살다가 자수성가를 한 아버지는 가족에게 애정을 베풀기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길 원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자신이 베푸는 물질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길 바랐고 언젠가는 그것을 고스란히 되갚길 바랬다. 당연히 가족의 사랑을 못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대신 약간이나마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해줬던 다정한 고모는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졌고 (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냄 ) 어른이 된 후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꼈던 사람, 요한은 난치병을 앓고 있고 점점 죽어간다. ( 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예정 ) 그녀는 신에게 분노하고 주먹을 내지르며 속으로 외친다. 당신은 왜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거냐고... 이게 과연 자비로운 신의 섭리가 맞냐고....

세상의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본다면, 소유하는 사람과 존재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소유하는 사람은 진리를 좇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소유물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물질을 더 가지려 애를 쓰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메이는 후자인 듯하다. 바로 존재하는 사람. 그녀는 ( 물론 결핍도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 진정한 사랑을 좇는 사람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요가를 하는 것도 단순 신체 단련이 아니라 힘들게 몸을 혹사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일반인들이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면서 살아가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끊임없이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여행하고 방황을 한다,

김혜나라는 작가의 이름은 [ 청귤 ] 을 통해서 들어봤지만 작품은 처음 읽어봤다. 마치 구도자와 같은 메이라는 인물이 그녀를 대변하는 것일까? 고통을 겪어가며 서서히 성장하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가면서 삶을 알아가는 모습에 나의 젊은 시절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은 정말 모순으로 가득 찬 게 맞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모순 덩어리이기 때문에. 인생에 정답이 과연 있을까? 정답을 찾아가는 메이의 여정을 바라보며, 그녀가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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