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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하는 별 희한한 상상을 했다. 그만큼 그녀의 글은 인간 심리의 진실을 포착하고 파고드는 힘이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심리 문제의 많은 부분이 양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주제로 글을 쓴 듯 보인다. 인간 관계에서의 문제, 술이나 마약과 같은 중독 습관 등등도 어쩌면 부모로부터 적절한 양육 ( 권위에 바탕을 둔 따뜻한 애정 ) 을 받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가 인간 심리를 그려내는데 있어서 천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젊은 마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그만큼 성공적인 삶을 꿈꿨다. 하지만 그녀는 사과지만 썩은 사과였고, 꽃이지만 향기가 없는 꽃이었다. 성격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 사람들의 관심을 즐겼던 그녀는 자기 때문에 질투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를 좋아했고 자기가 받아야 할 사랑을 다른 누군가가 받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 독사과같군요 ) 어쨌든 아름다웠던 그녀는 약사로 일하던 건실한 올리비에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을 하고 곧이어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 순간 자신이 꿈꿨던 화려하고 찬란한 인생이 ( 뭘 꿈꿨길래 ) 자신을 비껴간다는 걸 실감한다.
첫째 딸 디안을 낳고,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 - 남편 올리비에, 자신의 부모님 등등 - 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걸 보면서 마리는 분노하면서 동시에 첫째딸에 대한 애정을 접어버린다. 노통브는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것 같은 딸과 엄마 사이에 오고가는 미묘한 감정의 선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마리는 아이에게 애착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물론 산후 우울증일 수도 있지만, 마리의 엄마는 그것이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금방 알아챈다.
" 그간 디안의 삶에는 아침과 저녁이라는 두 번의 중요한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아빠가 그녀를 요람에서 꺼내 연신 사랑의 말을 해가며 마구 뽀뽀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우유를 먹이는 순간과 일치했다 ."
디안은 아름다운 엄마를 여신이라고 여겼다. 자신에게 애정을 마음껏 보여주지 않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둘째 니콜라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보여준 애정도, 둘째가 아들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간신히 자신을 달랬다. 그러나 셋째 셀리아가 태어났을 때 아기에게 무한정 애정을 베푸는 엄마를 보며 디안은 그냥 얼어버린다. 바로 그때, 자기 중심적인 엄마가 남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던 그때, 디안은 어린이가 되기를 멈춘다. ( 참 어색한 표현이지만 .. ) 그녀는 얼음이 되어버린 심장을 품고 어른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와... 하는 순간을 몇 번 느꼈다. 자식을 때리는 것만 학대가 아니고 무감정으로 대응하는 것도 학대라는 사실을 느꼈다. 가족 속에서 디안이 느끼는 고통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읖조리는 독백에서 어떤 좌절을 느꼈달까?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 그 순간 디안은 아이에 머무르기를 멈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나 사춘기 소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고작 다섯 살이니까. 그 상황은 그녀 자신의 내부에 구렁을 만들었고, 그녀는 구렁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환멸에 빠진 존재로 변했다. "
아멜리 노통브 작가는 짧고 직설적인 문체로 유명하다. 쓸데없는 묘사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글이 내 가슴 속으로 직진하는 느낌이다. 마리가 깨닫지 못하는 무신경한 양육이 똑똑하고 밝았던 한 아이를 어떻게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지가 명백하게 그려진다. 인간의 심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거의 미지의 분야가 아닐까?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게 되면서 그 아이가 자신까지도 미워하게 되는 그 모든 상황들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수작 [ 너의 심장을 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