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감 -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분투기 작가 시리즈 1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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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편집자들에게 원컨대 내게 보내는 청탁서엔 이렇게 써주오. 모월 모일까지 당신을 죽여달라거나 날더러 죽으라고! 그리고 덧붙여 주서하시오. 마감일을 지켜달라고! ”

이 책 [ 작가의 마감 ] 은 유명 일본 작가들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된다. 전체 글은 크게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1장의 제목은 [ 쓸 수 없다 ] 이다. 진짜 꾀병 아니고, 슬럼프나 질병 혹은 특정 이유로 글을 쓸 수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작가의 괴로움에 대한 글이다. 유명 작가 김훈씨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밥벌이의 지겨움인 것이다. 다달이 대출 이자를 갚듯,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작가들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으면 이런 책이 나온 것일까?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와 [ 도련님 ] 으로 일본 국민 작가로 자리매김한 나쓰메 소세키는 편집자에게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서신을 보낸다.

“ 14일에 원고를 마감하란 분부가 있었습니다만, 14일까지는 어렵겠습니다. 17일이 일요일이니 17일 또는 18일로 합시다. 그리 서두르면 시의 신이 용납지 않아요. ( 이 구절은 시인 조로 ) 어쨌든 쓸 수 없답니다 .”

“ 내일부터 힘내서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쓸 작정이지만, 쓰려고 하면 괴로워집니다. 누군가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 자네와 인쇄소가 입을 헤 벌린 채 기다리면 미안하니까 .”

뭔가 익살스러운 표현으로 편집자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는 듯한 대작가 나쓰메 소세키. 사실 작가같은 예술가들은 뮤즈가 손을 내미는, 혹은 번개를 맞은 듯한 영감의 순간이 오기를 기다려야하는게 아닐까?

2장 [ 그래도 써야 한다 ] 에서는 글을 쓰는게 너무 괴로워서 위장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치질에 걸리는 극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게 자신의 숙명임을, 피를 토하듯 고백하는 작가의 글도 있다.

1916년 [ 코 ] 라는 글로 나쓰메 소세키에게 극찬받으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2장에서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게 되는 숙명과도 같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 다 쓰고 나면 언제나 녹초가 된다. 쓰는 일만큼은 이제 당분간 거절하자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안 쓰고 있으면 적적해서 견딜 수 없다. 뭔가 쓰고 싶다. 그리하여 또 앞의 순서를 되풀이한다. 이래서는 천벌을 받을 성 싶다 .”

반면, 도통 글을 토해내지 않는 작가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편집자의 괴로움도 있다. 4장 [ 편집자는 괴로워 ] 에는 어떻게든 책이나 잡지를 출간해야 하는 출판사의 편집자가 원고를 보내지 않는 작가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혹은 작가 스스로가 편집자와 작가의 입장에서 일문일답을 한 글도 있다. 예를 들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 매문 문답 ] 이라는 글을 썼는데, 편집자와 작가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면서 입씨름을 하는 내용이다.

" 편집자 : 다음 달 저희 잡지에 뭔가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작가 : 무리입니다. 요즘 들어 아프기만 해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습니다.

( .. 중략 ..)

편집자 : 하지만 당신 정도의 대작가라면 한두 편 나쁜 작품을 낸들 명성이 떨어질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

작가와 편집자 사이에 얼마나 밀당이 많았으면 이런 글을 쓸 생각이 떠올랐을까 싶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글을 토해내야 하는 작가들의 하루 하루가 머리 속에 그려지고, 날짜에 맞춰서 편집을 마무리해야 하는, 그래서 낮과 밤이 없는 편집자들의 고된 생활도 눈에 훤하게 그려지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모든 작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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