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가족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4
김하율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피도 눈물도 없이, 가족을 인류처럼 사랑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남보다도 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가족의 화목을 장려하는 단일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 이야기가 한번씩 등장한다. 몇 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이 작정하고 며느리에게 사기를 쳤다던가, 특정 연예인의 부모들은 부끄러운줄 모르고 자식들의 등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는다.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의 어린 시절 – 가족들을 먹여살리던 시절 –을 울면서 고백하는 연예인들을 보고 있자면, 가족이 아니라 웬수라는 말이 저로 나온다.

정말 화목한 가족들도 많이 있겠지만, 이와 같이 대한민국 그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가족과 관련된 억울하거나 한맺힌 사연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단편 소설집 [ 어쩌다 가족 ] 은 정말 다양한 가족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집 마련을 위해 잠시 편법으로 맺어지는 가족, 혈연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피를 통해 가족으로 맺어질 뻔한 이야기 그리고 죽이고 싶은 부모를 둔 두 딸의 이야기까지............ 작가의 재기발랄한 필력으로 빚어진 여러 가족들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본다.

단편 [ 어쩌다 가족 ] 에서는 법을 살짝 역이용해서 아파트 계약 당첨을 해보려는 한국 커플과 이민 사기를 당해서 거리에 내앉을 뻔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지낼 곳을 구하게 된 한 우크라이나 가족이 등장한다.

“ 올해부터 보다 많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특별공급 청약기회가 제공됩니다 ”

“ 신혼부부 특공은 7년 이내이며 생애 한번뿐인 기회, 현명하게 써야.”

오직 7년이 지나지 않은 신혼 부부와 다자녀 가족에게 돌아가는 아파트 청약의 기회. 혼인 신고를 한지 정확하게 7년하고도 한 달이 지난 유정과 성태는 난감하기만 하다. 전세 만기일은 다가오고 있고, 이번에도 우리집 마련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인가?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유정에게 다시 신혼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위장 이혼과 다른 사람과의 위장 재혼. 그들은 서울에서 이민 사기를 당한 빅토르와 루드밀라 부부를 만나게 되고, 빅토르와 유정 그리고 성태와 루드밀라가 부부 연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 그들은 과연 조사관의 눈을 속이고 아파트 당첨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까?

단편 [ 피도 눈물도 없이 ] 에는 소위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오직 몸뚱이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등장한다. 사업 실패로 인한 많은 빚 때문에 매일 매일 이자 갚기에 급급했던 그 젊은이에게 사채업자들은 신장 하나를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여자는 바로 500년 넘게 살았다는 선녀. ( 알고보니 뱀파이어 )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선지 ( 소피 ) 만 먹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녀는 빚에 몰린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권속 ( 직속부하, 즉 같은 뱀파이어 ) 이 되는 것. 그러나 만약 500년 된 그녀의 가슴에 말뚝이 박히는 일이 생긴다면 권속은 바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데, 과연 그의 선택은?

단편 [ 가족의 발견 ]은 내가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던 이야기이다. 코피노인 미셸은 30년만에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왔는데, 아버지란 사람을 찾고 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미셸에게 허구헌날 돈 빌리러 오는 구차한 인물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이복자매인 인선을 만나게 되는 미셸. 인선 또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아버지 밑에서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 얼굴만 봐도 치가 떨리는 인선은 미셸의 귀에 솔깃하지만 끔찍한 제안을 속삭이는데..... [ 델마와 루이스 ] 를 떠올리게 만드는 끝장면이 아찔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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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대접 받는 아이는 커서 푸대접 받는 아내가 된다 "

[ 가족의 발견 ] 속에 이 문장이 나온다. 핑거스미스에 나오는 대사라는데 ( 아직 못 읽음 )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는데 있어서 가족의 영향력, 특히 부모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본다.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가족보다는 차라리 남으로 만나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더 나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현대 사회가 오히려 웬수같은 가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 김하율님의 재기발랄함이 빚어낸 유쾌한 상상력 [ 어쩌다 가족 ] 은 이 시대의 진정한 가족이란 뭔지 돌아보게 해주는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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