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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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를 만난 인간은 행복해져. 그들의 주특기거든.

꽃이 나비를 위해 아름답듯이 뱀파이어는 인간을 위해 아름다워. 

지옥에 있는 천사 같달까.”

전설이나 신화에서나 등장하는 뱀파이어. 매혹적인 외모와 눈빛으로 사람을 홀려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그들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존재로 알려져있다. 인간과 다르게,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뱀파이어는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 찾아와서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는 대신 피와 목숨을 앗아간다. 이런 괴물같은 뱀파이어가 한국의 현대 소설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었을까? 천선란 작가가 창조한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 속으로 들어가보자.

“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취약한 부분. 그 틈을 파고 들어서 믿음을 주고 사랑도 주면서

야금야금 인간을 파억는거야. 자신에게 피를 바치도록.”

한 재활 병원에서 환자들이 고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콘크리트 바닥에 짜부러진 시체들을 봐야하는 경찰들은 이것을 그냥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얼른 마무리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형사인 수연은 이 사건에 대해 다소 의문을 가진다.

투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현장에 혈흔이 거의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피가 한 방울도 없을 수가 있을까? 궁금해하는 수연 곁에 기척도 없이 불쑥 나타난 그녀, 그녀의 이름은 완다이다.

재활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난주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쓴 뒤, 엄청난 빚을 남긴 부모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하고 있다. 복리가 원금을 훨씬 뛰어넘은 상태에서 대부업체에게 연락을 받은 난주는 그 많은 대출금을 갚을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쌈짓돈이라도 벌고 있는 그녀. 죽고 난 뒤까지 그녀를 괴롭히는 부모와 가족의 혐오스러운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녀는, 인간이지만 괴물처럼 일그러진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완다는 어릴 적에 프랑스로 입양이 된 한국인이다. 양부모 모리스와 클리에는 완다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을 나누고 싶어하나,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딸의 마음 속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거울만 보면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여기게 되는 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자주 놀러가던 허름한 극장에서 투명하리만치 창백한 얼굴빛에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로 완다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만을 기다리게 되는데...

“ 외로움과 고독 끝에 몰린 사람들은 울지 않거든. 잊었다고 해야 할지 소용없는 걸 안다고 해야 할지. 영혼 없는 눈동자로 허공만 바라보며 하루를 까먹지. 슬플 때 눈물이 난다는거, 그래서 울 수 있다는 거, 그 나름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야.(...)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각이 발달해서 그 고독한 피의 향을 맡을 수 있어,”

[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 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이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어긋나고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간다. 항상 외로웠던 수연은, 경찰이 된 후 인생의 동반자처럼 여겨지는 은경 선배를 만나지만 그들의 동행은 오래 가지 않는다. 난주는 성실했던 자신보다 오빠를 아꼈던 부모가 사망하면서까지 자신에게 빚까지 남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 완다는 입양이 된 이후부터 이방인이라는 자신, 그 괴물을 매일 거울에서 발견해야만 한다. 외롭고 허무하고 살아있으되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그들의 삶에 나타난 존재... " 뱀파이어 " 이제 그들은 매혹적이고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존재에게 그들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 에게 진정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뱀파이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배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 여성 " 을 이야기하는 듯한 소설이다. 태어난 순간 고향땅을 떠나서 물 속에 떨어진 기름처럼 살아야 했던 완다나 낳기만 했지 돌보진 않았던 부모 밑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난주를 보면서, 나의 유년기나 학창시절도 떠올랐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 맞기는 한지, 아니, 중요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긴 한지, 궁금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젊은 시절 나의 방황은 다 그런 의문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나에게 속삭였더라면, 나도 구원자를 향해서 손을 뻗었을지도 모르겠다.

" 나 뱀파이어야. 괴물이라는 소리야."

" 괜찮아. 나도 괴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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