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 다섯 작가가 풀어낸 다섯 가지 짜장면 이야기
정명섭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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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면발에 스민 깊은 맛, 다섯 가지 레시피로 엮은 이야기

짜장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유달리 이사를 많이 다녔던 우리 가족. 힘겹게 이삿짐을 다 옮기고 한숨을 돌리고 나면 부모님께서 짜장면을 시켜주셨었다. 테이블도 없이, 아직 제대로 치우지도 않은 방바닥에 신문지만 깔고 앉아서 먹는지 삼키는지도 모르게 짜장면을 먹던 우리 남매들. 단짠 단짠 소스를 쫄깃한 면발에 섞고 그 위에 단무지를 얹어 먹으면 그 어떤 고급스러운 요리보다도 더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비록 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시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음식처럼 따뜻함을 풍겼던 그 짜장면. 짜장면은 가난의 남루함에서 오는 박탈감도, 혹은 실연의 아픔에서 오는 고통도 다 치유해주는 힘을 가진 듯 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서민 곁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 짜장면을 주제로 장르 소설집이 출간되었다니, 너무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집 속에는 총 5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 이야기인 [ 공화춘 살인사건 ] 과 세번째 이야기인 [ 철륭관 살인사건 ] 은 셜록 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처럼 정통 추리 소설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두번째 이야기인 [ 원투 ] 는 청소년 드리마에 가깝고, 네번째인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는 호러 판타지, 그리고 다섯번째 이야기인 [ 환상의 날 ] 은 판타지 로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중 나의 경우는 공화춘 살인사건,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우선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정통 추리소설에 가까웠던 작품이 바로 [ 공화춘 살인 사건 ] 이 아닌가 싶다. 일본이 조선을 탄압하던 시절, 공화춘이라는 반점에서 벌어진 중국인 노동자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홍주원 변호사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동경에서 유학을 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한창 모던 보이로써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른 일에는 큰 관심이 없는 그가 가진 유일한 취미라면 바로 공화춘 반점에서 짜장면 먹기! 살인 사건으로 인해 공화춘이 문을 닫게 되면 맛있는 짜장면을 먹는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건 해결에 착수한 홍주원!! 이상한 것은, 문이 잠긴 방에 혼자 있던 중국인이 죽은 채로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밀실 살인 사건이다!! 홍주원 변호사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사건 해결에 돌입하는데...

" 불가능한 것을 전부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무리 말이 되지 않더라도 진실일 수 밖에 없는 법이죠 ."

마치 셜록 홈즈가 식민지 시절 조선으로 날아온 듯한 이 대사 한 마디!! 독립 운동에 관심이 없는 약아빠진 홍주원 변호사가 갑자기 멋져보이는 순간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 공화춘에서 먹는 맛있는 짜장면 사수 ] 라는 미미한 동기에서 시작하였지만 결국에는 나라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된 홍주원 변호사... 이게 어찌된 일일까?

강지영 작가의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는 한 마디로 매혹 그 자체였다. 낮에는 한 대학교 문창과 교수 ( 내 생각에 ) 로 일하지만 밤만 되면 택시를 몰고 다니며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시키는 일을 하는 여주인공 수현. 그녀는 3년전 실종된 학생 다정이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자신과 비슷하게 택시를 몰면서 영혼을 태우는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어쩐지 심상치가 않다. 온 몸에 뱀문신을 한 그 남자는 고스트 스팟 등을 찾아다니며 떠도는 영혼을 모아 강령술 비슷한 의식을 하며 사람들에게 일종의 쇼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그는 어떤 사람이고 수현이 해야 할 임무는 과연 무엇일까?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란 일종의 작법을 가리킨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종결 짓기 위해 극의 절정 부분에서 신을 등장시켰는데, 이처럼 서사 구조의 논리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신의 출현과 같은 외부의 초월적 힘에 의존하여 이야기를 끝내는 경우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하는데, 강지영 작가의 소설의 서사구조가 약간은 이런 구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워낙 귀신이나 유령 이야기같은 신비한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간을 수호하고 사악한 영혼을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 세상도 살만하지 않은가? 싶었다. 아, 그리고 비록 딩뇨병이긴 하지만 힘든 일을 마치고 난 뒤 꿀맛같은 짜장면을 먹는 주인공 수현의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할 일을 마치고 따뜻한 짜장면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다.

사실 짜장면은 중국에서 왔지만 이젠 모두들 인정할 것이다, 짜장면은 한국 음식이라고. 짜장면을 주제로 하여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정말 궁금했었다. 짜장면이 음식이고 하나의 요리라는 편견 때문에 멋진 장르 소설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내 기우였던 것 같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짜장면처럼 정말 맛깔나고 감동적이고 신비롭고 미스터리 그 자체였던 듯 하다. 오늘은 친구와 이 책을 들고 고추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이 책에 나오는 각각의 소설들처럼 다채롭고 맛있는 짜장면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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