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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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흩어졌던 것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시 끼워 맞춰지기 마련이다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는 장소와 시간 속에 위치했던 비뫼시. 이곳은 난쟁이와 꼽추 그리고 노숙자와 빈민들이 어울려사는 북쪽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이다. TV가 있고 열기구가 발명된 문명 사회인데, 희한하게도 왕권통치가 등장하고 수도원의 입김이 쎄다.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라니!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문구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 도랑 옆에 쳐진 야영 천막들마다 너무나도 배가 고프기 때문에 돈 한 푼 안 주고 비스킷만 준다 해도 기꺼이 일할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

" 이들 대부분은 튀어나온 광대뼈와 툭 불거져나온 턱만 보일 만큼 몰골이 형편없었고, 덕분에 이들은 지적이거나 도덕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이라기보다는 상당히 발전한 동물에 가까워 보였다 "

존 스타인 벡의 " 분노의 포도 " 와 피터 스털리브레스의 " 그로테스트와 시민의 형성 " 에 나오는 문구인데 이런 식으로 낯익은 문구들이 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된 채 내내 등장한다. 실험정신이라고 해야할까? 이 책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고전과 명저에 등장하는 문구들을 이야기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카르마 폴리스는 전혀 다른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낯익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토리에 상관없이 이 책에 흠뻑 젖어들 듯 하다.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앞서 이야기했던 빈민촌에 살고 있는 유리 부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청소 용역직에 몸담아왔던 터라 고질병인 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박쥐 끓인 물이 질환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겨움을 참고 박쥐탕을 마신다. 그 이후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된 그녀. 한편 당시 비뫼시를 다스리던 가시 여왕의 독단적인 명령으로 부실 시공으로 건설된 댐이 폭우이후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대홍수가 발생하여 도시가 물에 잠기는데, 특히 실패자들이 살아가던 북쪽 마을은 거의 수몰지구처럼 되면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 선진국 때문에 발생하는 오염이 일으킨 자연 재해가 개발 도상국에 해를 입히는 요즘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한 대목 ) 유리부인과 남편도 목숨을 결국 잃게 되지만 유리 부인 뱃속에 있던 아이는 살아남아 후에 수도원에서 꾸리는 고아원에서 42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한편, 북쪽 마을의 반대편에 도시의 지배층이 살고 있는데 이들 중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가시여왕이 있다. 한때 그녀는 마약에 찌든 선왕의 광기 때문에 아들처럼 살아야 했던 비극적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여동생을 잃고 자신도 괴로움에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러던 찰나, 한 초월적 존재를 만나고 나서 그녀의 마음 속에서 뭐라고 할까? 아주 순수한 악의 결정체? 같은 것이 탄생한다. 감정에 휘둘리던 약하디 약한 인간에서 이제는 차가운 이성의 지배를 받는,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응징을 가하는 신인류가 되었다고 할까? 물론 나쁜 의미에서 말이다. 그녀는 초월적 존재를 만나고 난 후 ( 기이하게도 박쥐처럼 생긴 존재 ) 그녀도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후 태어난 왕자는 42번과 묘한 연관관계를 갖게되는데....

[ 카르마 폴리스 ] 는 질병이 창궐하고 유령이 노래하고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던, 인류의 역사 중에도 광기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그냥 역사를 풀어내었다기 보다는 현대의 인류가 겪고 있는 여러 모순들 ( 환경오염, 권력자들의 부패 등등 ) 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비뫼시라는 상상의 공간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볼 수 있겠다.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의 뒷골목을 날아가지 않아도 되고 미국 대공황 시대를 날아가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전혀 에상치 못했던 재미를 전달해주었다. 비뫼시라는, 현대도 아닌 중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 속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인간의 나약함과 걷잡을 수 없는 광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런데 그 광기에 불을 지르는 것은 누구? 인간은 스스로가 저지르는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글쎄...... 감당할 수 없는 광기와 충동에 불을 지르고는 뒤에서 웃고 있는 존재가 있다. 인간 중심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힘이 이 비뫼시라는 곳을 내내 강타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신이 인간에게 던지는 매우 잔인하고 허무하고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농담이 이야기 내내 흐르고 있는 듯 하다. 결국 우리는 " 모략 " 을 통해서 살아가고 " 도덕과 이성 " 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우리는 " 파괴 " 하고 " 혼란 " 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걸... 마지막에 날아가는 한 동물의 뒷모습이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실험 정신과 상상력에 감탄할 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비뫼시의 42번이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독서에 열중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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