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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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웃의 아픔을 실제로 경험하는 듯한 먹먹함이 소설 내내 느껴진다. 더군다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이라니. 그녀가 소설 중간중간에 시를 읊듯, 조곤조곤 들려주는 한국 전설과 신화 등등은, 그녀의 정체성과 뿌리는 확고히 한국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뿌리를 뽑힌 꽃과 같은 상태로 인해 정체성의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보는데 캐서린도 그렇지 않았을까? 자유로운 나라 미국에서, 엄격하고 완벽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훈육을 겪는 캐서린.. 어쩌면 그때부터 비극의 씨앗은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독자인 우리는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채로 정신 병원을 배회하는 한 여인을 만날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 아이의 눈동자에 악령이 깃들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병원에 들어온 그녀는 현재 멍한 상태에 걸음걸이는 좀비와 같다. 캐서린은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알 수 없다. 불어 터진 젖을 짜야 하는 걸로 봐서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실 나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심한 산후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 지냈는데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매우 당황하고 슬퍼했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이를 품에 안은 터라 아이를 예뻐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내 가졌지만 하루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베란다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덜컥 드는 바람에 자기 자신이 너무 무서웠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다.

책 속 주인공인 캐서린도 아이를 만난다는 기쁨에 마냥 들떠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녀가 과연 임신 전이나 후에 산후 우울증이라는 상태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그런 불행은 나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남의 일이거나 혹은 그냥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쓴 실화 속에 등장 ) 여기서 드는 생각은, 여성으로써 우리는 한번쯤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그 이면에 깔려있는 위험, 즉 열달 동안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 호르몬 이상 발현, 신경 회로 혼란, 치매에 가까운 기억 상실 등등등

어쨌건 캐서린은 광기에 가득 차서 병원에 들어왔지만 서서히 본래의 자신을 회복해 나간다. 산산이 흩어졌던 그녀의 정체성은, 마치 직소 퍼즐의 조각을 모아다가 끼워맞추는 것처럼,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민을 왔지만 힘들었던 가족들과의 생활, 첫사랑에게서 받은 학대의 기억 그리고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던 제임스와의 사랑의 기억까지,,, 그녀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캐서린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하기에 다다른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직계 가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이 나에게 남아 있어서인지 더 크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성들은 ( 물론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 깨어지기 쉬운 꽃병 같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자극과 스트레스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아기를 낳고 행복만을 기다리던 캐서린에게 일어난 갑작스러운 불행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그녀가 서서히 정상적인 상테를 회복하는 과정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나를 죽이지만 않으면 고통은 결국 그 사람은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임신이나 출산 등을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여성으로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책 [ 네 눈동자 안의 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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