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었던 것뿐 ”

시간이 흐른다는 건, 우리가 성숙한 어른이 되어 이 세상을 좀 더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순수하면서도 본질에 가까웠던 " 나 "로부터 멀어져, 방향을 잃은 채 둥둥 떠다닌다는 의미인 걸까? 최진영 작가의 장편 소설 [ 내가 되는 꿈 ] 은 언뜻 봤을 땐, 주인공 " 태희 " 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기까지 경험을 쌓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삶에 지치고 찌들어버린 어른 " 태희 " 가 당돌하지만 순수했던 어린 " 태희 "에게 보내는 SOS 같다.

이 책에서 어린 태희는 일찍이 부모의 이혼을 겪고 외할머니 댁에서 철부지 이모와 함께 살게 된다. 복잡하고도 아리송한 어른들의 세계....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그녀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눈치껏 그들의 복잡한 사정을 짐작하고 이해해 보려는 조숙한 어린이 태희. 순간순간 느끼는 공허함과 슬픔을 돌멩이와 나뭇가지에 담아서 차곡차곡 쌓아둔다. 돌멩이와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탑은 태희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만큼 높이 쌓여만 간다.

“ ‘ 엄마 아빠 직장이 멀리 있으니까 따로 사는 거야 ’ 라고 말할 때마다 화가 난다. ‘ 같이 있고 싶지 않다 ’ 와 ‘ 혼자 있어야만 한다 ’ 는 어떻게 다른 의미일까? 동네를 돌아다니며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주우면서 나는 계속 이런 생각을 한다. (... ) 외갓집 앞의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쌓여만 간다 ”

한편, 직장이 된 어른 태희는 믿고 의지했던 남자 친구의 배신에 치를 떨고 꼴 보기 싫은 상사의 갑질 때문에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 삶을 살고 있다. 불행히도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어른이 되었고, 복잡다단한 어른의 세계에 툭 떨어진 그녀는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처럼 잘못된 운명 속에 갇혀 미션 수행을 하는 기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없던 어른 태희는 어린 태희에게 편지를 쓴다. 알량한 권력에 의지하여 아이들을 쥐 잡듯 잡았던 초등학교 담임.... 그 선생의 차에 똥을 쌌던 당돌하고 불의를 참지 않았던 원래의 태희에게로 말이다.

“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미래의 내가 이 편지를 아주 우습게 여기기를 바랄 뿐이다 ”

이 책을 읽으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난으로 인해 힘들었던 우리 집. 마치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소용돌이쳤던 삶 속에서 엄마와 우리 형제들은 회색의 얼굴빛을 한 채 잠들곤 했다. 나는 나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5학년 때 선생님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매질을 하며, 오히려 그녀가 나의 가난을 부끄러워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 아마도 엄마가 돈 봉투를 제때 가져오지 않는다는 신호였던 듯 )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슬픔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면 조금 덜 슬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조그만 일기장을 사서 적기 시작했다. 온갖 감정을 담았기에 엄청나게 컬러풀해진 일기장이었다.

꼬마 태희가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주워서 쌓았던 것처럼, 나는 매일 매일 조금씩 분노와 슬픔을 연필에 담아 일기장에 꾹꾹 눌러쓰곤 했다. 사랑과 애정을 받을 줄 알고 세상에 나왔는데 무감하고 예의없는 어른들의 갑질과 분노의 대상이 된 어리둥절함을 담아서 말이다.

만약 시간이 강처럼 흐르지 않고 호수처럼 고여있다면, 나도 어린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몇 번 힘든 일이 있었고 고비도 좀 있었지만 그때 그때 좋은 인연의 도움을 받았고, 나름대로 좋은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내가 편지를 보내면 어린이 나는 나에게 어떤 편지를 보내줄까? 이 책 [ 내가 되는 꿈 ] 속 어린 태희처럼 시크하지만 어른스럽다면 한마디쯤 덕담을 적어줄 것 같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잘하고 있어서 정말 대견하다고.....

잠시 눈 감았다가 떠 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다.

어른이 되면 세상을 좀 더 잘 알고 세상 속에서 좀 더 잘 살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의 마음으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어른 흉내내기 매뉴얼에 적힌 대로 살아가는 기분이 드는 건.... 나 혼자 만의 일일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써 너무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책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반복해서 꾸는 우리의 꿈을 들려준 책

[ 내가 되는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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