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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
평생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온,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어서 살아와야했던 이 나라 여성들을 생각해본다. 미투운동 이후에 우리의 젠더 영역은 지각변동을 겪었긴 하나, 내면의 새가 깨어나서 큰소리로 지저귀기에는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많이 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별 생각 없이 살아가다가도 문득문득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성차별의 단면들,,, 우리는 아직 멀었다. 갈 길이 무척 멀었다고 생각한다. 평등한 인간을 성으로 나누어 범주화하고 높고 낮음의 계층을 만드는 사람들, 여성은 스스로 생각할 머리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권력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 [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저자 이라영씨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이 에세이를 쓰면서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책속에서 풀어놓고 있다. 시대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진실은 역시 공명하기 떄문인 걸까? 세월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 나 " 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잡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였지만
" 나 " 는 여성인 것이 자랑스럽고 그렇기에 여성이기 깨문에 받는 불평등이나 차별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 그리고 여성이기에 맞춰야할 획일성도 이제는 거부한다. 내가 느끼는 것을 이라영 저자가 책 속에 풀어내어 주어서 얼마나 기쁘고 통쾌한지.
이 책에는 많은 저자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는 바로 저자 조라 닐 허스턴 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작품 [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 편을 통해서 흑인 남성이 자신들의 문학에서 잘 다루지않는 젠더 권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녀가 흑인 여성으로써 느낀 감정과 흑인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 그들의 눈을 신을 보고 있었다 ] 의 초반에 잘 담겨 있다고 한다.
" 백인 남자는 자기 짐을 내려놓고는 흑인 남자더러 그걸 들라고 하지. 어쩔 수 없으니까 흑인 남자는 짐을 집어 들긴 하지만 그걸 짊어지고 나르지는 않아. 그냥 자기 여자 식구들한테 짐을 넘긴단다. 내가 아는 한 흑인 여자들이 이 세상의 노새란다 ."
책 속의 주인공 재니의 할머니가 백인 주인에게 노예로서 노동을 착취당했다면, 주인공 재니는 각각 3번의 결혼을 통해서 남편의 지배라는 가부장적 제도에 의한 착취를 경험하게 된다. 각 남편들은 " 여자들은 대신 생각해줄 사람이 필요해 " 라거나 " 여자의 자리는 가정이라고 하는 등 " 지금 생각하면 간이 부어도 한참 부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세번째 남편 티 케이크는 질투 때문에 그녀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 총을 든 남편에 대한 정당방위로 그를 쏘아죽인 재니는 법정에 서게 되고 백인 여성들이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반면, 살인죄를 주장하며 무섭게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바로 흑인 남성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운명을 좌우하는 배심원들은 백인인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외에도 " 나는 밤마다 나이트클럽에서 졸도 직전까지 놀았다 " 라며 잘 노는 여자의 전형성을 보여준 젤다 피츠제랄드의 모습도 인상깊었다. 어느 문화든 잘 노는 여성의 이미지는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고 먹잇감을 노리고 유흥업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남성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기도 한다 . 젤다가 살던 시절도 이와 비슷하여 대놓고 놀러다니던 젤다는 사치스럽고 남성 편력이 심한 여자로 취급받고 남편인 스콧 피츠제럴드를 정신병으로 몰아넣었다는 억울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역사란 누구의 관점에서 쓰여졌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사실을 알아보니, 스콧은 젤다의 글에 대해서 혹평하고 그녀가 글쓰는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니,,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자였던 것!! 심지어 젤다의 일기를 표절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혀를 끌끌 차게 되었다.
투명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이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을 위해서 글을 써온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 이렇게 훌륭한 작가인데도 알려진 것이 많이 없는 여성 작가들을, 이 책을 통해서 많이 만나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젠더 감수성에 대한 교육이나 페미니즘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 왜 언론은 페미니즘을 기본 사회 시스템을 뒤집으려하는 테러 집단 쯤으로 묘사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여성의 몸으로 여성의 말을 하겠다는데 말이다. 너무 탐나는 책을 읽고 서평까지 쓰게 되어서 행복하다. 앞으로도 이라영 저자의 활동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