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백수린 산문 다정한 매일매일 속

[ 다정한 매일매일 ] 속 백수린 저자는 순전히 재미로,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빵을 굽는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먹이고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

소설을 쓰는 행위가 즐거워서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녀는

빵을 굽는 행위도 그 자체로 너무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쓰는 것과 빵을 굽는 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흡사해보인다.

삶 속에 들어있는 여러 재료 – 가족, 사랑, 실연, 도전과 실패과 작가의 상상력이 섞여서

만들어지는게 소설이라면 밀가루나 계란, 버터, 이스트 등을 섞고 숙성시킨후

빵이라는 창조적인 작품을 완성하게 되니까.

이 책에서는 다양한 빵 종류가 등장하고

저자 백수린씨는 그런 빵과 그녀가 읽은 책이 가진 유사점을 들어

특정 책을 빵에 비유하고 있다.

인상깊었던 대목을 몇 가지 들자면 [ 사과 머핀 ] 의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매일 사과를 한 일씩 드시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건강에 좋다는 생각으로 드시던 사과이긴 하나,

그녀와 여동생에겐 지긋지긋해진 과일이 되어버린 사과.

그녀는 [ 사과 머핀 ]을 줌파 라히리의 [ 그저 좋은 사람 ] 이라는 책에 비유한다.

” 가족이란 대체 뭘까?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영 이해할 수 없고,

서로를 가장 견딜 수 없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줌파 라히리의 소설들 덕분이다 “

백수린 산문 다정한 매일매일 속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들이 서로 잘 이해하고 있고

서로에게 발생한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을거라 믿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동생이 왜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렸는지 모르는 누나가 있고

홀로남은 아버지가 자신과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자식이 등장한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돌봐주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관계가

그저 오해와 상처로 점철되어 있었다면?

그러나 그녀는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 그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해하고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사랑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음을,

주인공들의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백수린 작가는 달콤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델리만쥬를

파트릭 모디아노의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에 비유하면서

비록 시간은 과거를 망각의 어둠 속으로 침몰시키더라도

감각의 형태로 각인된 기억들은 살아남아, 현재의 우리를 과거와 연결시켜준다고 이야기하고

예술품처럼 완벽한 형태를 지닌 티라미수 케잌을

제임스 설터의 [ 소설을 쓰고 싶다면 ]에 비유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문장을 쓰는 소설가의 정확한 언어로 그려낸

소설쓰기 비법에 비유한다.

빵을 떠올리면 우선 여러 감각들이 떠오른다.

따뜻한 촉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 그리고 예쁜 모양들...

비록 에세이 속에 사진은 없지만 상상력 만으로 그것들은 이미 마음 속에 그려진다.

그레서인지, 작가가 설명하는 여러 작품들을 빵에 비유한 것만으로도

이미 몇 번을 읽은 듯한 아련한 느낌이 든다.

이제 사과 머핀을 보면 줌파 라히리의 [ 그저 좋은 사람 ] 이 떠오를 것이고

티라미수를 보면서 [ 소설을 쓰고 싶다면 ] 이라는 책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할지도,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를 읽다보면 델리만쥬의 참을 수 없는 달콤함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빵을 굽고 소설을 쓰는 백수린 작가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두 가지 활동을 정성스럽게 하는 그녀의 성실한 모습에

독자들도 안심하고 오늘도 그녀의 책을 집어들지 않을까?

마치 달콤하고 고소하고 따뜻한 향기가 나는 듯한 책

[ 다정한 매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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