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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타네히시 코츠는 유명한 논설위원이자 논픽션 작가라고 한다. 소설 [ 워터 댄서 ] 는 그의 픽션 데뷔작인데 그의 첫 작품인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척박한 환경이라는 손수건에 흑인들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기쁨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한땀한땀 수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뿐 아니라 토니 모리슨이나 앨리스 워커 같은 다른 흑인 작가들의 작품처럼 [ 워터 댄서 ] 도 매우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나는 곧 작품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 미국 남부 지방의 노예제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노예제도에 대한 접근법이 남다르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버지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이람 워커라는 이름의 흑인 노예 청년인데 그는 특이하게도 백인 농장주를 아버지로, 흑인 노예를 어머니로 둔 사생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혼혈아인 그의 발은 백인 상급자들의 세계와 흑인 노예들의 세계 각각을 밟고 서 있다. 농장주의 사생아라는 신분은 그에게 이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숨막히는 책임을 떠맡게하기도 한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헤어진 하이람은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현재 그는 18살이고 단지 어머니가 그냥 어디론가 팔려갔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비상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트라우마가 어머니에 대한 정확한 기억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비록 어머니는 없지만 다른 여인이 그를 내내 길러주었고 따라서 그의 삶은 흑인 노예들이 삶을 일구고 있는 라클리스에 있다.
성장함에 따라, 그는 매우 영리하고 책임감있는 청년이 된다. 그래서인지 백인 농장주 아버지는 그에게 배다른 백인 형인 메이너드의 보호자의 위치를 맡기는데 이 형이란 사람, 예의도 모르는 무뢰한인데다가 아주 멍청한 인간이다. ( 그래서 보는 내내 속이 터짐 ) 그러던 어느날 밤 시내에 놀러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이람과 메이너드는 마차에 타고 있는 채로 구스강에 빠지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하이람은 살아남지만 메이너드는 결국 실종되고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하이람이 발견된 곳이 강둑이 아니라 그가 생각지도 못한 장소라는 것이다. 하이람에게 그 어떤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날 밤 구스강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은 하이람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쑥덕거리게 되고 뒤이어 하이람은 그 유명한 " 언더그라운드 " ( 흑인 노예들이 탈출하는 것을 도와준 단체 ) 의 일원이 되는데 하이람이 어떤 식으로 " 언더그라운드 " 의 일원이 되었고 그 이후 어떤 활약을 벌였는지가 전체 책의 이야기를 차지한다. 그 외에도 하이람이 자신의 윗대 선조들처럼 시간과 공간을 비틀고 조작하는 능력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암시된다. 하이람이 할 일은 그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하이람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언제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둔다. 하이람은 자유를 갈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거두고 길러준 고향, 라클리스에 대한 집착과 굴레를 느낀다. 결국 마음 속 갈등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하이람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이자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의 독백 내내 그가 매우 이상적이고 강한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스스로를 항상 성찰하고 주위 인물과 상황에 대해서 관찰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생각이 깊어서 남을 배려한다. 책을 읽다보면 하이람과 하이람이 라클리스와 언더그라운드에서 사랑하는 인물들에 대해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코츠는 이야기 안에서 노예제도와 노예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슬픔을 내내 묘사하고 보여준다. 노예제도라는 역사 속에서 공동체는 와해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은 신체적인 그리고 정서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다른 누군가의 노예가 된 사람의 삶은 누군가에게 잊혀지거나 추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일.
흑인들이 그동안 무엇을 견뎌와야 했던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설 [ 워터 댄서 ]. 그 뿐 아니라 이 소설은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흑인들의 영혼의 이미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의 현실은 비록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코츠는 이야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이야기 속에는 고통의 순간도 있지만 즐거움과 친밀함 그리고 심지어 가족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코츠가 표현하는 인물들은 절망과 슬픔 가운데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따스함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
천천히 시작된 이야기가 나를 삼켜서 마치 엄청나게 불어난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책을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강렬해서 책을 든 순간부터 중간에 끊을 수 없이 계속 읽게 만든다. 이 책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매우 들뜨게도 했다. 슬픔과 비애 속에 엿보이는 삶에 대한 희망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끔은 비참하고 패자의 삶을 살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하기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 이겨야할 것 같다. 감동의 물결을 전달해주는 책 [ 워터 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