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조력자살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미야시타 요이치 지음, 박제이 옮김 / 아토포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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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고 싶어서 죽기로 하였습니다 ”

“ 안락사를 고민하고 결심하고 이루어내기까지 ”

그 전에는 안락사나 조력 자살 등이라는 문구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어도 내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보여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몇 년전 Me before you 라는 소설을 읽고 안락사, 다른 표현으로 조력자살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Me before you 속의 남자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 환자가 되고 그를 24시간 도와주게된 여주인공과 삶을 나누는 연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성공적이었던 자신의 인생이 거기서 멈춰버린 것과 매번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삶에 대해서 절망한 그는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받을 것을 결정한다. 연인과 가족을 너무나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남자주인공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개인보다는 집단이 앞서는 나라에서는 “ 죽음 ” “ 자살 ” 과 같은 용어는 터부시되기 쉽다. 그러기에 음지에 숨어있는 그 단어를 양지로 이끌어내서 토론해보기도 힘든 와중에 “ 안락사 ” 나 “ 조력 자살 ” 같은 것을 법제화하려는 노력은 더욱 더 힘든 일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안락사와 존엄사를 구분하자면 “ 안락사 ” 는 “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이 심한 불치병 환자를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조기 사망으로 유도하는 것이고 그에 비해서 존엄사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임종 상태에 들어갔을 때 더 이상 연명치료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 존엄사라고 한다. 존엄사 인정 정도의 단계 밖에 이루지 못한 우리에게 이러한 책은 앞으로 " 안락사 " 문제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방향을 잡는데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것은 한 통의 메일에서 시작되었다 ”

이 책은 실존했던 인물의 안락사를 다룬 르포르타주 형식의 글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꾸며낸 글이 아니라서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는 고지마 미나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녀는 현재 다계통 위축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고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하는 일본을 떠나 외국인의 안락사도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받길 원한다.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 씨는 유럽에서 살면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나라들 (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등 )을 다니면서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 안락사를 이루기까지 ] 라는 책을 썼고 그 책을 읽고 한 줄기 빛을 본 고지마씨는 출판사에 연락하여 미야시타씨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마침내 이 둘은 만나게 된 것이다.

스페인에서 살고 있던 저자는 직접 고지마씨를 만나러 일본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그녀의 상태를 직접 보게 된다. 다계통 위축증이란, 소뇌에 병변이 생김으로써 근육이 점점 무력화되고 여러 장기에 이상이 생겨서 점점 몸을 쓸 수 없게 되는 병이다. 말기암과는 달리, 병의 진행이 느린 대신, 점점 무력화되는 스스로를 지켜봐야하는 고통이 심하다. 병실에서 그녀와 그녀의 자매들 ( 게이코, 사다코 )를 만났을 때 그는 고지마씨가 매우 밝은 미소를 가진 여성이고 건강하다는 인상을 받지만 실제로 그녀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투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혀 근육이 마비되어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기본, 화장실까지 가지 못해서 방 안에서 볼일을 봐야하는 불편한 처지. 현재는 고형물을 먹을 수는 있으나 점점 삼키는 능력이 떨어져서 위루 ( 목으로 삼킬 수 없어서 위에 직접 관을 연결하여 영양소 주입 )를 달아야 한다거나 호흡능력이 달려서 호흡기를 달아야할 미래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고지마씨는 어릴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온 매우 독립적이고 강한 성격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은 생이 살아갈 의미가 크게 없다고 판단하고 스위스에 있는 조력자살 단체 " 라이프 써클 " 에서 편안한 마지막 숨을 쉬기를 바라는 것이다.


" 만약 저처럼 다계통 위축증을 선고받았다고 치자구요.

당연히 죽음을 맞을 각오는 필요없지요?

하지만 몸져누워 말도 못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눈도 깜박일 수 없게 되고

인공 호흡기와 위루를 달 각오도 필요하죠.

그와는 달리 만약 의사에게 암 선고를 받고 말기가 되었다면 시한부라는 각오가 필요하죠.

어떤 게 더 좋으세요? "

삶이 중요한 만큼, 그래서 삶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만큼, 죽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다. 태어난 것은 내 마음대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죽음 만큼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결정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행복해질 수 있을 가능성을 점쳐봐야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되도록이면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기마련이니까.


결국, 고지마 미나씨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 라이프 써클 " 이라는 곳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피를 나눈 언니들은, 처음에는 슬퍼했지만, 나중에는 고지마씨의 소원을 들어준 것에 대해서 기뻐한다. 복잡한 심경이 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지마씨의 마지막은 평온했나 보다.


이런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책을 읽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성찰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 나와 같은 상태가 된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힘내서 살라고도, 죽어달라고도 말할 수 없겠지요. 할말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 저는 제가 더 혼란스러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정말로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고마워, 고마워 하면서 눈을 감는 동생을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고 할까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떠났으니까요.

물론 슬프지만 안도감도 있었어요. 본인이 바란다면 가족도 포함해서 생각했을 때,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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