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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ㅣ 안전가옥 쇼-트 2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조예은 작가를 처음 만난게 [ 뉴서울파크 젤리 장수 대학살 ] 이라는 장편 소설을 통해서였다.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놀이공원,,,,, 그리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젤리... 그런데 이 두 가지 요소가 만나 대학살이라는 참극이 벌어진다. 마치 웃고 있던 어릿광대가 권총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총알을 난사하는 느낌이랄까? 소름끼치면서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를 뽐내는 소설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던 그 소설처럼 이 단편집 [ 칵테일, 러브, 좀비 ] 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웅크리고 있는 비극과 잔인함을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매우 날카롭게 드러낸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도, 스케일이 크진 않아도 분명 존재한다. 각 단편이 다루는 죽음, 어둠, 쓸쓸함,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주제는 어쩌면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말을 해주고 있는 듯 하다.
[ 초대 ]
어릴 적 주인공은 회를 잘못 먹고 가시를 삼킨 채 살아간다. 분명 가시는 목 안쪽 기도로 넘어가는 부분에 존재하면서 주인공을 괴롭히지만 의사도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고 단정지어버린다. 그런데 어느날 어두운 분위기를 온 몸에 휘감고 나타난 어느 여인이 가시의 존재를 인정하고 없애주기까지 하는데.....
“ 그때의 나는 늘 목의 이물감에 시달렸다.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잊고 있다가 침을 삼킬 때면 한두번씩 따끔 하는 정도였다. 너무 사소해서 남에게 말하기조다 민망하지만 확실히 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 존재하지 않지만 나에겐 느껴지는 것. 그런 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
여성으로써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이물감 ( 관습이라는 이름의 억압 ?)을 견디면서 살아온 주인공. 그러나 그녀의 이물감을 제거해줄 순간이 조금씩 다가온다.
“ 다들, 있는 것도 그냥 없다, 없는 것도 있다 하고 사는 거죠.”
[ 칵테일, 러브 좀비 ]
평소와 다름없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온 아버지가 갑자기 좀비로 변해버렸다. 영화 속 좀비로 넘치는 세상은 망하지만 주인공 주연이 머무는 세상은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조용하다. 바이러스 감염 경로도 밝혀지지 않았고 백신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의 밥을 먹지 못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물어 뜯으려는 바람에 아버지를 묶어놓게된 모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 좀비니까 ) 아버지의 처리를 두고 고심하던 모녀의 앞에 속보가 달려드는데....
"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가 밝혀졌습니다, 강남의 한 국밥집에서 발견된..... "
재난 영화와 가족 드라마가 적절히 혼합된 것 같던 이야기 [ 칵테일, 러브, 좀비 ]. 어느날 갑자기 좀비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두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녀를 보니 좀비는 형식일 뿐이고 어째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가족들의 현실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말썽만 일으키던 아버지, 주식으로 돈을 날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던 끝에 이제는 죽은 듯 죽지 않은 몸으로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 아버지. 여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버지를 사랑했던가?
" 주연은 자신에게 가족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했다. 아빠를 사랑했나?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하지만하지는 않았다. 엄마를 함부로 대하고 고집불통이고 자기 이야기만 맞다고 주장하는 그가 꼴보기 싫었던 적도 많았다. 사실 싫은 기억이 더 많았다 ."
예전에 팀 버튼 감독이 쓴 "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 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부모에 의해서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는 굴 소년의 이야기인데 그로테스크하다 느낄 정도로 잔인하고 엽기적인 내용이지만 동시에 슬픔이 몰려들면서 아름답다는 느낌까지 드는 그런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조예은 작가의 이 [ 칵테일, 러브, 좀비 ] 라는 단편집을 읽고 나니 그 책이 생각이 났다. 잔인하고 괴기스럽지만 동시에 섬뜩한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책... 음울하고 괴기스러움 속에 따뜻한 사랑이 숨어있기도 하고... 하여간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계속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책인 듯 하다.